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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2001년 11월 18일 감사절 열두번째 주일>
  
찬양 / 육성설교(25:10)

나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창 세 기       12: 1- 5  

갈라디아        2:19-21  

     

    나 중심의 철학과 신앙

    데카르트라는 철학자가 "cogito, ergo sum" 즉 "내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 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즉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 존재를 확인하면서 결국은 신의 존재까지도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명제를 따르면 내가 모든 역사의 중심이고, 존재의 시작이 됩니다. 내가 없으면 하느님도 우주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제가 갑자기 저도 잘 모르는 철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때부터 '나'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데카르트는 17세기 사람인데, 이 때부터 서양의 개인주의가 점점 자라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 실존주의 철학이 발전하면서 나의 실존에 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런 철학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서양은 그 후 점차 개인주의가 발전하게 되면서 아울러 사회적으로는 핵가족화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신학도 이런 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개인의 구원, 개인의 영적 체험 등이 교회의 중심적인 신앙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존 웨슬레의 체험적인 신앙, 그 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이루어진 미국 교회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신앙을 그 근간으로 하였습니다. 보수적 신앙이란 개인의 체험을 중시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미국 교회 가운데서도 근본주의에 가까운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교회가 세워지면서 한국 교회 역시 개인 구원과 영적 체험을 중시하는 교회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에 복음이 전파되던 시기는 대단히 어려운 시기였고, 복음이 가난한 서민들에게 큰 희망으로 다가오면서 교회는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반상의 계급사회에서 억압받았던 상민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기독교의 복음은 정말로 기쁜 소식이요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의 억압 아래 놓이면서 기독교는 해방의 복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독립 운동을 하였습니다. 그 후 해방의 혼란기와 6 25 한국 전쟁의 고난의 시기, 그리고 이어지는 정치적 대변동 가운데서 계속적으로 고난을 당한 한국민들에게 복음은 언제나 희망이었고, 교회는 고난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 구원이란 말이 아주 중요한 용어로 우리 가운데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신앙이란 '내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내가 복을 받고 내가 천국에 간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순전히 나의 구원에 집중되어 있지, 하느님의 나라나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신앙에서는 자기 희생이나 겸손이나 사랑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나라를 구하지도 않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이 어디까지나 내가 잘 되고, 내가 복 받고, 내가 영생을 얻는 데 있기 때문에 나를 희생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게 마련입니다. 구원이 공동체의 회복이란 의식이 없기 때문에 공동체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의지가 별로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주장이나 뜻을 관철하려 하기가 일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공동체 회복이란 사실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 연합이나 일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순전히 개교회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모두가 결국 나 중심의 신앙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기보다는 자신의 뜻에 하느님의 말씀을 가져다 붙이면서 억지를 부립니다. 이 때문에 교회들이 싸우면서 나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교회가 모든 일에서 항상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을 물으면서 일을 한다면, 더욱 굳건한 공동체로 결속이 될지언정 결코 분쟁하거나 나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 중심의 신앙은 항상 내가 옳고 내가 믿는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이시며, 내가 가진 교리만이 참되며, 내가 섬기는 교회만이 좋은 교회라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연대하거나 협력하지 못하며,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생각과 신앙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를 주저하지 않게 됩니다. 근본주의 신학과 신앙을 지향하는 교회일수록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장로교는 수십 개로 분열되면서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 바로 교회 개혁 운동입니다. 나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 하느님 중심의 신앙으로 바뀌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이 개인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데 있음을 깨닫지 못하면, 한국 교회 미래는 별로 밝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오늘 읽어 드린 구약성경 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불러내셔서 그 고향과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게 하시면서 주신 약속의 말씀들입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이 말씀에 보면, 현재 살고 있는 땅, 그리고 그가 태어난 땅, 그리고 친척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떠나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곧 아브람이 지금까지 그의 삶의 근거였던 땅을 떠나라는 것으로 그것은 그의 모든 삶의 부정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람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명령을 주신 것은 그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아브람은 단순히 자기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야 함을 지시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놀라운 미래의 약속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오늘의 안정적인 그의 삶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버릴 때 하느님께서 그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그에게 복을 주어서, 그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람이 살던 땅은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그의 아내 사래는 임신을 하지 못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자식이 없음은 미래가 없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물질적 풍요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아브람을 부르셔서 미래를 향해 모험하게 하셨고, 그러면 자식을 얻을 뿐 아니라 그 자식을 통해 그 민족이 형성되고, 그 민족으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가 복을 받는 새로운 역사를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그런 명령을 따라 용감하게 고향을 떠나 전혀 낯선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후에 뒤늦게 아들 이삭을 낳았지만, 그 아들을 하느님께 번제로 바치라는 가혹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철저하게 아브라함 개인의 욕망과 바램을 꺾으시고, 순전히 하느님의 뜻에 따를 것을 요청하신 것이었습니다. 철저한 자기 부정, 자기 죽음을 통과하고서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교회에 비슷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마 16:24-25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고 한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내놓으라는 명령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가 죽을 때 비로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나'란 바로 "정욕과 욕망을 가진 죄많은 육신"에 속하여 있는 존재, '세상'에 속한 존재를 뜻합니다. 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좀처럼 이 '나'를 놓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믿기 때문에 내가 없어지면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나'를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집요하게 붙잡고 있는 '나'를 버리고 그를 따라오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와의 싸움이라고 하겠습니다. '나'를 버리므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느냐 아니면 한 알의 밀알 죽지 않으므로 한 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나'를 끝까지 붙잡고 있느냐 하는 결단을 해야 할 기로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주저하지 않고 자기를 비웠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갈라디아서 2장에서 그는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빌립보서에 구체적으로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받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쉽게 '나'를 버린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나는 투쟁을 통해서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고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 일은 나를 버리는 일입니다. 내 생각과 이념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 뜻과 편견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 욕망과 세상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리는 일입니다. 내 생활의 기반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심지어는 부모나 자식, 집과 재산 모두를 포기할 각오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나 중심으로 쌓아올렸던 신앙조차도 버리는 일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노력이 바로 바른 신앙의 정진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철저한 자기 부정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영원한 삶으로 영접될 수 있습니다.

    도시 문명을 거부하는 삶

    아브람이 자기가 살던 땅을 떠난 이후부터는 순전히 하느님만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안정적인 농경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수없이 떠돌아야 하는 유목생활을 죽을 때까지 하였습니다. 그것은 농경생활은 바로 정착을 의미하고 안정된 삶을 의미하기에 다시 자기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이기에 허락되지 않고 오로지 유목생활을 통하여 하느님만을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자기 부정이란 '나' 하나 죽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문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유목생활에서는 도시 문명이 탄생하지를 않습니다. 부를 축적하여 또 다른 부를 생산해 내는 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자본이 축적되지 않으면 문명이 탄생할 수 없으며, 도시가 만들어질 수 없고, 그러면 국가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목생활은 바로 국가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로지 하느님만을 그들의 통치자로 받아드리면서 그만을 의지하고 살게 되는 생활입니다.

    이런 유목생활은 자연 깊은 영성으로 그들을 인도해 갑니다. 양떼를 돌보면서 그들은 책을 보지도 않고 무엇을 만들지도 않기에 오로지 깊은 생각과 고요한 묵상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와의 교유를 이루게 됩니다. 이 땅의 작은 나라 대신에 하느님이 통치하시는 영적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들의 생각이 넓어지고 그 영성이 깊어지게 마련입니다.

    기독교가 과학문명을 탄생시키고, 도시 문명을 만들어 내는데 크게 기여하였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타락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도시 속에 몰려 있으므로, 도시 문명을 그대로 받아 드리고, 그 분주함에 쫓겨 살기에, 광야에서 양떼나 몰고 다니면서 체험했던 깊은 영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개신교는 수도원마저 거부하여 버렸기에 어디에서도 수도원적 영성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교회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도시 속에 있으면서 올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려 하지만, 결국은 '나' 중심일 수밖에 없는 신앙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보다는 '나'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보다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우리의 영성이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도시 문명 속에 취해버린 '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도시 문명 속에 살지만, 거기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면서 자기의 수도원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골방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공연히 분주하게 이리 저리 이 문명의 허무한 화려함에 쫓겨 돌아다니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영성을 일깨워 하겠습니다. 영의 눈이 밝아져 하느님을 뵈올 때 비로소 우리는 '나'를 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자기를 버린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영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리고 거기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와 영광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자리하게 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목적은 나의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나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며 그 나라를 먼저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있으므로 하느님의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죽을 때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자기를 부정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드릴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통합될 것입니다.

    나 중심의 신앙으로 하느님의 역사를 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 하느님의 역사는 지극히 편협하고 작으며 보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만유의 아버지 되시는 하느님을, 소수 믿는 사람들만의 아버지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산 자의 세계와 영적 세계를 모두 통치하시는 하느님을 지극히 제한된 산 자의 세계 속에만 가두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나 중심의 신앙을 버리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리에서 세계를 보며 이 역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폭넓은 그의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며, 그의 나라를 완벽하게 이루실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옹졸하고 편협한 나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 하느님 중심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확 트인 큰 안목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보며 세계를 보면서 마침내 완벽하게 이루어질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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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비밀을 보게 하소서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80%} <2001년 10월 28일 교회개혁 주일> 찬양 / 육성설교(29:03) 하늘의 비밀을 보게 하소서 시 편 111: 1-10 사도행전 7:54-60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Date2002.07.08 Views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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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멸망에서 영생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meta NAME="GENERATOR" CONTENT="Namo WebEditor v5.0">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80%} <2001년 10월 21일 감사절 여덟째 주일> 찬양 / 육성설교(27:59) 멸망에서 영생으로 시 편 67: 1- 7 요한복음 3...
    Date2002.07.08 Views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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