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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27 08:53

품위있는 삶(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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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월 27일 주현절 넷째주일>
   육성설교

품위있는 삶(2)

  시      편  37: 1-11
고린도후   4:16-18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대국과 견주어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정보 통신 분야입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 인구가 2,438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0%가 넘는 수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고속 인터넷 이용률이 아주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 보급률도 아주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빨리 빨리'라는 별명이 붙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격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발전한 정보통신의 결과를 좋은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터넷을 통해 건전하지 못한 성문화가 그만큼 빠르게 널리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터넷을 많이 접하면서 점점 더 기다리는 것을 못 참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저 자신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보는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니까 금방 금방 열리지 않는 곳은 그냥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매사에 서두르게 됩니다. 밥도 서둘러 먹고, 신문도 대충 훑어보며, 출근도 급히 서둘게 되고, 일도 급하게 처리하게 됩니다. 줄이 길게 늘어선 극장이나 유원지에는 잘 가지 않게 되고,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게 됩니다. 자동차를 몰아도 필요 이상으로 급히 몰게 되고, 앞의 차가 조금만 지체해도 신경질을 내게 됩니다. 이런 참지 못하는 성격은 그대로 우리의 가정 생활에도 나타나 작은 일에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므로 부부간의 싸움이 잦아지고 그것은 바로 이혼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부정을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뇌물을 주고라도 빨리 일을 처리하려는 우리의 급함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목회를 시작한지 1, 2년 안에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으로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여 교회 성장에 혈안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인들도 금방 눈에 띄게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면 곧 목사를 불신임하게 됩니다. 이런 풍토 속에서 교회가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기 어렵고, 진리를 올바로 들어내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허약한 체질로 덩치만 커질 뿐 쉽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교회가 되어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이렇게 당장의 결과를 기대하는 조급한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는 별로 매력이 없는 종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기도하면 당장 복을 받고, 당장 병이 고쳐지며, 당장 부자가 된다고 허풍을 치면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스스로 낮아지고 가난하게 되어 죽음 이후에 오는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맙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지금 여기서 당장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당장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교회는 거짓으로 현대인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그 품위를 잃고 있는 것은 인내와 절제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서 인내와 절제를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품위는 서둘지 않고 인내함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릴 줄 아는데 있습니다.

    참고 기다리라

    오늘 읽어 드린 시편 37편은 올바르게 살려는 의인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그 의를 지켜 갈 것을 격려하는 시편입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번성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하느님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그 의를 따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죄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 37:7-9

    여기서 의인과 악인이 대조되고 있는데, 악인들은 지금 여기서 형통하고 있는데 반해서 의인들은 오히려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운 분인데 어째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는 것일까? 이것이 옛날의 신앙인들이나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한결같은 답은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은 그때그때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바로 의인의 특성입니다.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 조급함에 쫓기는 사람은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시편에서 말하는 악인은 반드시 살인하거나 사기를 하거나 남의 것을 도둑질하거나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그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을 뿐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약속 같은 것을 소망하지 않으며, 오로지 현실만을 중시하고 나의 판단을 절대시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을 '악인'의 범주에 넣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 땅에 주어진 삶을 전부로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고 출세를 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죽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사업도 열심히 합니다. 다만 그 사업이 빨리 번창하도록 적당히 뇌물을 쓰기도 하고 약간의 탈세도 하며, 약간의 부정도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받아드립니다.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기업을 성장시키며, 때로는 싸구려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그들을 혹사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보편적인 것입니다. 정부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적당히 눈을 감아줍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 모두가 비슷한 형편이며, 개인의 삶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그렇게 보면, 현대인은 대부분 성경에서 말하는 '악인'의 범주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들의 특징은 현실만을 인정하고 거기서 모든 것을 얻고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조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반해서 의인은 하느님의 역사를 기다릴 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역사를 이 땅의 삶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 전체에 미치는 역사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어떤 결과를 얻지 못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그 이후의 삶을 바라봅니다. 다시 말해서 의인들은 하느님의 통치의 범위를 이 땅의 삶에 국한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까지 포함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 여기서 당장 무엇인가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좀더 멀리 그리고 크게 바라보면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들은 대체로 비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당장 무엇을 얻으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가난하며 고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의인이라고 그 이름을 부를만한 사람은 지극히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몰려가는 넓은 길 즉 악인의 길, 현실적인 길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런 의인을 지키셔서 그들의 자손이 이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악한 일 피하고, 선한 일 힘쓰면, 이 땅에서 길이길이 살 것이니, 주께서는 공의를 사랑하시고, 성도를 돌보시기 때문이다. 성도는 영원토록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질 것이다. 시 37:27-28

    하느님의 공의의 역사는 당대(當代)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자손의 대까지 길게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결국 성도들 혹은 의인들은 오늘만을 보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그 속에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역사를 기다릴 줄 아는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

    오늘 읽어 드린 고린도후서 4장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 갑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겉사람'은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속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겉사람'은 시간 속에 있기 때문에 낡아질 수밖에 없다면, 그와 달리 '속사람'은 시간을 넘어선 영원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점점 새로워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서둘러 과학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여러 가지 편리하고 좋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이 땅의 삶을 추구한 사람들의 덕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선조 말의 쇄국정책(鎖國政策) 때문에 일본보다 서구 문물을 늦게 받아드리므로 뒤쳐져서 항상 일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60년대 이후 이를 악물고 분발한 결과로 그 간격을 많이 좁혀갈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맸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장이 과연 좋은 것인가'라는 새삼스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장은 결국 쇠퇴(衰退)해 가는 한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깊이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의 지나온 역사를 들쳐보면,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 같은 대제국이 멸망한 기록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장은 곧 쇠퇴하는 한 과정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따라서 이 성장을 서둔다는 것은 쇠퇴를 재촉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농경사회는 3천년을 두고 서서히 발전하여 왔는데,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그 기간이 3백년으로 단축되고, 다시 정보사회는 30년으로 당겨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산업화 이후 이 세계는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급속한 발전으로 자원의 고갈과 자연환경의 파괴 역시 가속도(加速度)가 되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세계 문명이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얼마 가지 못하여 세계 문명이 쇠퇴할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한 번 속도가 붙은 욕망의 전차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 이 문명 열차의 속도를 낮추어 쇠퇴의 종말을 면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역사의 정해진 코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겉사람은 낡아진다"는 한 마디로 표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 '겉사람'을 벗어 던지라고 여러 곳에서 권면 하였습니다. 발전이라는 욕망의 전차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조급하게 서둘러 이루는 성장신화를 버리고 차분히 들어앉아 하느님이 이루시는 영적 세계를 통찰하라는 것입니다. '속사람'은 '겉사람'과 달리 날로 새로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속사람'은 시간을 벗어난 영원의 세계에 속하였음을 뜻합니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면 우리는 점점 새로워지면서 완성된 단계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이룩하는 발전은 결국 쇠퇴나 멸망에 이르게 되지만 하늘 나라에서의 성장은 완성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속사람'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먼저 '겉사람'이 추구하였던 성장 신화를 버리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서둘렀던 조급함을 버리는 것입니다. 찬찬히 하느님의 뜻과 그 이루시는 일들을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되찾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통찰하며 살필 줄 아는 지혜를 얻는 일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급히 내닫는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 천천히 걷는 소달구지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속사람'의 길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반성하고 우선 속도를 늦추고 차분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또한 하느님의 영의 세계를 통찰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변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슬로우푸드'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슬로우푸드' 운동이란 맥도널드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체 기계 문명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1989년 11월 9일 채택된 선언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산업 문명의 이름 하에 전개된 우리 세기는 처음으로 기계의  발명이 이루어졌고, 이후 기계를 생활의 모델로 삼고 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으며, 우리의 습관을 망가뜨리며, 우리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하는 빠른 생활 즉 음흉한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를 굴복시키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에 상응하기 위해서 사람은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보편적인 어리석음인 빠른 생활에 반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 만족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미 확인된  감각적 즐거움과 느리며 오래 가는 기쁨을 적절하게 누리는 것은 효율성에 대한 흥분에 의해 잘못 이끌린 군중에게서 우리가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우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 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하고, 품위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의 이름으로,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있고, 우리의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진취적인 해답은 슬로우푸드이다.

    이 운동은 신앙운동은 아니지만 속도를 거부하고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따라야 할 운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점점 새로워지는 속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품위는 서두르지 않는데 있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 아는데 있습니다. 냄비 속의 물처럼 금방 바글바글 끓었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신앙이 아니라 끈기 있게 역사의 종말을 기다리며 그 때를 준비해 가는 듬직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불철주야 쉬지 않고 달려서 이루는 성장 신화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자유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속도의 노예에서 해방되십시오. 발전이라는 욕망의 전차에서 머뭇거리고 있지 말고 뛰어 내리십시오. 정신 없이 달려가던 발길을 멈추고 차분히 자신을 성찰할 시간을 내십시오. 속도와 성장은 우리의 쇠퇴를 재촉할 뿐입니다. 급하게 서두르느라 잃어버린 품위를 되찾기 위해 멈추어 서십시오.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맺었던 관계들을 끊어 내고 자기를 성찰할 시간을 만드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가 이루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안식을 되찾아 흐려진 영혼을 맑게 하고 욕망으로 얼룩진 마음을 정결케 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가 이루시는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점점 더 완성된 인격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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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td { font-family : 굴림체; font-size : 9pt; line-height:180%;} <2001년 11월 4일 감사절 열번째 주일> 찬양 / 육성설교(25:29)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사무엘상 17:41-49 빌립보서 4:10-13 생명과 능력에 연결되어 사도 바울은 그...
    Date2002.07.08 Views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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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하늘의 비밀을 보게 하소서

    하늘의 비밀을 보게 하소서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80%} <2001년 10월 28일 교회개혁 주일> 찬양 / 육성설교(29:03) 하늘의 비밀을 보게 하소서 시 편 111: 1-10 사도행전 7:54-60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Date2002.07.08 Views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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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멸망에서 영생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meta NAME="GENERATOR" CONTENT="Namo WebEditor v5.0">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80%} <2001년 10월 21일 감사절 여덟째 주일> 찬양 / 육성설교(27:59) 멸망에서 영생으로 시 편 67: 1- 7 요한복음 3...
    Date2002.07.08 Views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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