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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2001년 6월 17일 성령강림절 후 둘째주일>
  찬양    / 육성설교(25:35)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시     편      42: 6-11

갈라디아       6: 6-10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신앙

    시편 42편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갈망하는 시인의 탄식이 담긴 기도의 시편입니다. 이 시인은 아마도 오랜 고난의 세월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가서 살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이 70년이었으니 우리가 일제 밑에서 신음하였던 35년의 꼭 두 배가 되는 기간입니다. 35년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70년의 세월은 정말 지루하고 긴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포로된 이스라엘인들의 희망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그들이 믿는 하나님만이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견뎠던 것입니다. 고난의 초기에는 열심히 기도하고 곧 나타날 것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월이 점점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체념하게 되고 절망에 빠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은 오늘 가물어서 비를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의 상황과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 가물어서 농작물이 말라죽고 마실 물조차 얻기 힘든 상황에서 해가 내리쪼이는 하늘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안타깝고 간절한 심정은 그대로 긴 고난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린 이스라엘 자손들의 심정과 비슷합니다.

      하나님, 사슴이 타도록 목말라 시냇물을 찾듯,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애태웁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명의 하나님을 갈망하니, 언제 내가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을까?

    요즈음처럼 극도로 가물어 시냇물이 모두 말라버린 상황에서 타도록 목마른 사슴이 물 한 모금을 얻기 위해 온 산을 헤매어 다니듯, 이 시인은 지금 생명의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까마득한 세월이 지나면서 시인은 너무도 그 성전이 그립고, 언제나 다시 거기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을지 알지 못하여 한숨짓고 있습니다.

      지나간 날들이 생각난다. 무리의 앞장을 서서 하나님의 집에 이르던 일, 환희와 찬송소리 드높던 그 행렬, 순례자의 축제로 법석을 떨던 그 일, 이제 이런 일들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이 시인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미 그의 나이가 고령이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기 전에 과연 다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쁨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 이산 가족들과 비슷합니다. 헤어진 세월이 50년이 훌쩍 지나가면서 모두 고령들이 되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데, 죽기 전에 북녘에 두고 온 사랑하는 이들을 한 번 만나보는 것이 소원이지만, 좀처럼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오늘의 상황에 많은 이산 가족들이 눈물지으며 탄식하고 있음과 같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경험들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간절함, 그 불안함, 그 그리움, 그 목마름을 제삼자가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시인은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이 시인은 체념에 빠지려는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자기 신앙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구원의 손길이 오랜 세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 확신을 끝까지 붙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전에 같이 하나님을 섬기던 많은 사람들이 그 신앙을 버리고 체념과 좌절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거기에 함께 휩쓸릴 것 같은 위기를 느끼고, 어찌 하든지 자기 자신을 믿음 가운데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인의 몸부림과 탄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 15일이 남북공동선언이 있은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작년 남북의 정상들이 서로 만나 얼싸 안으면서 굳게 악수를 하였을 때 통일을 향하여 크게 한 발 내 딛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가면서 좀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였지만 우리가 기대한 만큼 새로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제2차 정상회담을 위하여 한국을 방문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지난 2월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된 채 새로운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들어 북한상선이 우리 해역을 허락 없이 통과한다든지 북방한계선을 넘어 온다든지 하는 문제로 또 다시 냉전적 기류가 우리 사회에 흐르고 있습니다. 어떤 신문의 사설은 "그로부터 1년이 경과한 오늘의 시점에서 목격하는 것은 무엇이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변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가운데 특히 북한의 태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 말이 옳을지 모릅니다. 50년 간의 반목이 1년 사이에 완전히 바뀌기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계속 냉전적 사고를 굳히면서 북한을 욕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대로 북한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고 양국의 정상들이 허심탄회하게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나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국제적인 정세 특히 미국의 정책의 변화가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으며, 여기에 편승한 국내의 수구 세력들이 그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한반도 통일의 길에 놓여 있는 많은 장애물들을 속히 치워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1년 전 불가능해 보였던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수구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가 오늘에 와서는 또 다시 냉전적 생각을 소리 높이 외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체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통일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소리들은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의 정연주 칼럼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러나 과연 남북관계는 1년 전 감격을 죄다 삼킬 정도로 그토록 절망적인가. 그렇지 않다. 정상회담 때의 감격에 걸맞는 큰 진전이 없었다 하여,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정체되었다 하여, 정상회담이 열어놓은 거대한 가능성,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역사적 가능성마저 부인해서는 안 된다. … 중요한 것은 외눈이 아닌 두 눈으로 서로가 무기를 겨누고 있는 분단현실과, 평화 공존해야 하는 하나의 겨레임을 동시에 균형 있게 보는 것이다. … 지금이야말로 남과 북이 모두 차분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를 대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일희일비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은 없다.

    낙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낙심하지 말고 인내로 먼 앞날을 바라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빠르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많은 의인들이 그치지 않는 고난 속에서 '어느 때까지입니까'라는 탄식의 부르짖음을 토했던 것입니다. 고난의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기까지 기다린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체념하거나 절망에 빠져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대신 악의 세력에 동조하고 그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고난 너머에 있는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부분 그 소망을 인내로 기다리기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신앙을 변질 시켜 자기 선택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하곤 하였습니다. 사슴이 타는 목마름으로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길임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믿음을 갖고 기다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예언자는 악이 성한 시대에서 고난 당하는 의인들이 울부짖을 때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며 의인은 성실함으로 살 것이라고 하였고, 갈라디아서에는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지쳐서 넘어지지 않을"정도로 사실상 우리가 뿌린 선의 대가를 거두는 시기는 빨리 오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수확의 때가 오기 전에 "지쳐서 넘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미래가 불투명한 암담한 사회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을 기다린 옛 시인의 신앙과 소망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신앙

    먼저 우리는 이 시인에게서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신앙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만, 그 믿음을 분석해 보면 자기 중심적인 신앙임을 알게 됩니다. 대체로 구원을 자기 번영과 평안으로 받아 드리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서도 결국 하나님이 자기에 복을 내려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셔서 늘 평안함을 주시기만을 기도하게 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고난을 만나게 되면, 신앙은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쉽게 세상과 타협하고 불의와 손잡으면서 고난을 피하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신앙은 어디까지나 자기 번영과 안녕(安寧)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에 언제든지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련 없이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버립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의 신앙의 목표를 자기 번영과 평안을 위한 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 예배당에 나올 때는 복 받기를 원하여 나왔지만, 예수를 믿고 그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신앙의 목표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신앙은 확고해지면서 고난이 밀어 닥쳐도 쉽게 포기하거나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시고 그 신앙의 목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맞추어져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분명한 신앙을 확립하므로 어느 때나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신앙

    둘째로 우리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신앙을 굳게 세우는 시인의 놀라운 의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시편의 시인은 주변 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빈정대는 조롱 소리가 그의 뼈를 찌른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사회적 분위기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유독 이 시인만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므로 조롱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여론을 견뎌내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그의 음식이 될 정도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쉽게 자기생각을 버리고 여론에 이끌려 갑니다. 특히 족벌언론들이 만들어내는 여론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생각 없이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뚜렷하지 못하면, 그 믿음은 그가 처한 역사적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론이 판단해 주는 대로 따르고 정권이 이야기하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하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모든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 의식을 키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심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심판은 재판관이 법정에서 내리는 결정을 말합니다. 재판관이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로 법과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그런 각도에서 이 말씀을 보면, 보다 예리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키워서 사람을 보며 역사를 볼 것을 역설적으로 교훈하고 계신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비난과 비판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비난은 대체로 근거가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을 욕하는 것이지만, 비판은 분명한 근거와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의 잘잘못을 가리는 행위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비판의식을 키우지 못한 까닭으로 역사적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채 일반적 여론에 동승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의식이 없는 까닭은 앞서 지적한 대로 복 받는 것이 곧 구원이라고 믿는 신앙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신앙이 자기에게 몰두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에는 관심이 없고 따라서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이 양산되고, 역사가 바뀔 때마다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좀더 분명한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시대적 상황을 올바로 분별하면서 모든 사람이 다 넓은 길로 가더라도 영원한 생명의 길인 좁은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

    셋째로, 이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보면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낮에는 주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양 노래가 나에게 있을 것이니, 나는 다만 살아 계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드릴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노래 소리를 그는 들으면서, 지금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고난은 계속되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그의 약속은 성취될 것이며, 구원은 마침내 이루어질 것을 믿기에 그는 그 하나님께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고난의 시기에 인내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에게 꾸준히 기도를 드리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면서 험난한 좁은 길을 택한 나를 비웃을 때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일입니다. 사회적 여론이 내가 이제까지 확신하여 따랐던 신앙과 다를 때에 그 신앙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지키는 길도 하나님께 나가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일입니다. 기도는 내게 지혜를 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게 하며, 능력을 얻게 하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합니다. 기도는 나의 역사의식을 일깨워 이 시대를 올바로 분별하게 하며,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므로 악의 유혹을 물리치게 합니다. 기도는 고난의 때에 의인의 강력한 무기이며, 상처받았을 때 그것을 치료해 주는 손길이며, 외로울 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길이며, 낙심될 때에 용기를 북돋우는 은총의 도구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끝까지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발전하고 있으며, 조금씩 개선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도 지금 어려운 가운데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의 문제입니다. 질서의식, 도덕적 품성, 민주적 의식 등에 있어 훨씬 발전하였다고 하겠습니다. 통일의 문제만 해도 지난 1년 동안 별로 이룬 것이 없다고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이렇게 한 발짝씩 전진하면 언젠가는 통일에 이르게 될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고 우리가 이루지 못한 많은 일들을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것임을 우리가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중도에 여론에 휩쓸려 이랬다저랬다 하지말고 끝까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환경 문제만 해도 과거에 비할 수 없이 우리의 의식이 개선되었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이런 노력이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노라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친히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환경 보전에 앞장 서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마침내 통일도, 환경도, 우리의 구원도 완성하실 것을 믿기에 그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제 한결 같은 믿음으로 무장하여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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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80%} <2001년 6월 17일 성령강림절 후 둘째주일> 찬양 / 육성설교(25:35)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시 편 42: 6-11 갈라디아 6: 6-10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신앙...
    Date2002.07.09 Views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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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삼위일체 하나님

    <2001년 6월 10일 삼위일체주일> 찬양 / 육성설교(30:04) 삼위일체 하나님 이사야서 61: 1- 3 요한복음 16:12-15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주로 교회력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성령강림절과 삼위일체주일을 보완하므로 성...
    Date2002.07.09 Views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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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한 생명으로 엮으시는 성령

    한 생명으로 엮으시는 성령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10pt; line-height:150%} <2001년 6월 3일 성령강림주일> 찬양 / 육성설교(20:46) 한 생명으로 엮으시는 성령 에스겔서 37: 1-10 고린도전 12: 4-13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임과 동시에 환경주...
    Date2002.07.09 Views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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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세련된 지각을 지닌 성도

    세련된 지각을 지닌 성도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10pt; line-height:150%} <2001년 5월 27일 부활절 일곱째주일> 찬양 / 육성설교(26:46) 세련된 지각을 지닌 성도 잠 언 2: 1-12 히브리서 5:11-14 히브리서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Date2002.07.09 Views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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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두 아들의 효

    <2001년 5월 12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21:57) 두 아들의 효 잠 언 23:15-25 누가복음 15:11-32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 사랑의 비유'는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며 그가 돌아오자 기쁨으로 영접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서 모든 죄인을 용서...
    Date2002.07.09 Views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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