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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월 1일 성령강림절
후 넷째주일> 영생하는 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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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55: 1-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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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 52-59 |
요한복음 6장 처음 부분에 오병이어(五餠二魚) 기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가져온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서 받아 드시고 축사하신 후 둘러앉은 오천 명의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들뜨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많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개인적인 기적일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병을 고치시는 기적을 많이 행하셨지만, 그것은 집단적인 치유가 아닌 개인적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반해 오병이어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오천 명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체험한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이 특히 일상적으로 늘 필요한 빵을 나누어 받았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을 더욱 들뜨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튿날 예수님이 가신 곳에 좇아갔습니다. 다른 기적과 달리 오병이어 기적은 사람들을 대단히 흥분케 한 기적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찾아온 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 그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의도하신 뜻이 여기에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이 그보다 더 우선적이고 중요함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그런 의도로 해석하여 오병이어의 기적과 더불어 영생하는 양식에 관한 예수님의 담화를 함께 묶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곧 이어진 대화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먼저 그들의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인 만나를 먹었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그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그 떡을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어서 51절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은 많이 헷갈렸습니다. 떡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면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시니 유대인들이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떡과 만나라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영적인 차원으로 이야기가 비약되므로 유대인들은 얼른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뿐 아니라 오늘 우리도 얼른 이 말씀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니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는 것을 양식(糧食)을 먹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편 19편에 보면 야훼의 율법은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 또 신명기 8장 3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는데, 만나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의 본문인 이사야서 55장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을 포도주와 젖으로 비유하면서 값없이 와서 사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또 좋은 것으로 먹고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한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또한 에스겔서에 보면 예언자가 두루마리 책을 받아서 먹었는데 입에서 달기가 꿀 같다고 하였습니다(겔 3:1-3). 하나님의 율법을 먹는 양식으로 비유한 것은, 우리가 날마다 양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양식과 같아서 날마다 우리가 듣고 배우고 소화하여 그 내적 삶을 살찌게 만드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은 바로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로고스(Lógos) 즉 말씀이라고 지칭하였고, 그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바로 그의 삶과 교훈을 듣고 그대로 따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받은 율법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의 삶을 변화시키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되는 율법이지만, 그 율법을 지킬만한 능력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그 율법대로 행하지 못하고 다른 길로 나갔기 때문에 늘 책망과 심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율법은 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들일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율법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런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한 유대인들이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오히려 형식에 치우치고 더 큰 위선에 빠져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실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말씀이 48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6:48-50 이스라엘은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는 말씀은 바로 저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말씀을 먹으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58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스라엘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으로 사람들이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즉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과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은 사람들을 죽지 않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간직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단순하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신 교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의 삶, 특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의 삶과 직결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신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역사를 믿고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로고스'는 단순하게 말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진 말씀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런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말씀한 대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들어오시는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삶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을 들으라. 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대신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단순한 들음이 아닌 철저한 자기 부정과 거듭나는 삶을 강력하게 요청하신 것입니다.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의 낮아지심을 본받아 우리도 낮아짐을 뜻함이며, 그가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시어 자기를 내어주심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나의 생명을 완전히 내어 드림을 뜻합니다. 우리 개혁교회는 말씀을 중심으로 한 교회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바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으로만 이해되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만찬 예식을 소홀히 함으로 말씀은 단순히 선포되고 듣는 것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만찬 예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닌 '먹는 것'을 상징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이것을 소홀히 함으로 우리는 말씀을 먹는 대신에 듣기만 한 것입니다. 먹는 것은 바로 내 속에 그 말씀이 들어와 소화가 되어 내 영적 삶이 변화되고 자라나는 것을 뜻합니다. 귀로 듣는 하나님은 다분히 사변적(思辨的)이고 이론적인 것에 머물고 말지만, 먹는 하나님은 바로 그가 내 안에 오시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는 체험적 삶을 뜻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만찬 예식을 다른 교회보다 비교적 자주 갖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밥을 매끼 먹듯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매일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이 자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며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교회에 와서 참여하는 성만찬 예식은 어쩌다 갖지만, 매일 우리가 먹는 세 끼 밥상이 바로 성만찬의 자리가 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가 먹는 밥을 단순한 양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것이며, 내가 마시는 국이나 물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라고 생각하면서 먹는다면 나의 매일 매일의 삶이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 그의 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본받는 삶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성만찬 예식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닫고 참여하심으로 단순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그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즉 성육신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구체적으로 자신을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는 자리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영생하는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므로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