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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1:12

자신을 성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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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성별하라

 

  <2001년 7월 15일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주일>
   찬양   / 육성설교(24:37)

자신을 성별하라
 

 시     편     13: 1- 6  

로 마 서     12: 1- 2

     

    시편에는 여러 종류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중 찬양시와 탄식시가 가장 많습니다. 탄식시는 단체 탄식과 개인적 탄식으로 나뉘어집니다. 단체 탄식시는 대체로 나라가 외적의 침략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구하는 시편들이고, 개인 탄식시는 개인적으로 당한 어려움에서 탄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시편들입니다. 그중 개인 탄식시는 시편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할 만큼 많습니다. 개인 탄식시는 질병이나 죽음에 직면하였을 때, 무고 당하거나 투옥되었을 때, 그리고 사적인 원수에 의해 고난 당할 때 쓰여진 시들입니다.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첫째는 무죄한 자의 자기 변호 시입니다. 이것은 시인이 자기를 두고 말하는 무고에 대하여 항변하고 자기 입장을 밝히려 하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저주시입니다. 여기에는 시인의 원수나 적대자들에게 저주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참회의 기도를 보여 주는 시입니다. 여기서는 자기 죄의 고백과 사죄와 고침을 간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기 신앙고백

    오늘 읽어 드린 시편 13편은 개인 탄식시로서, 자기를 반대하고 핍박하는 원수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시인이 끝까지 자기 신앙을 지키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겠다는 결단을 표현한 시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시편의 개인 탄식시를 읽으면서 이들이 하나님께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원수들에게 심판이나 저주를 내려주시기를 기도하는 내용들을 보면서 신약성경의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의 분위기란 대체로 시편의 참회시에 나타난 그런 분위기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의인은 하나도 없고 모두 죄인이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의를 주장할 수는 없고 오직 회개할 일만 있다는 것이 바로 신약적 분위기라고 하겠습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조차도 자기가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자기의 약함만을 자랑하겠다고 하였으니, 누가 감히 자신의 의를 하나님 앞에 내 세울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자기의 의를 내세우며 하나님 앞에 탄식의 기도를 드린 구약의 신앙인들을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죄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참회의 시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가령 시편 26편에서는 시인이 아주 떳떳하게 자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님, 나의 무죄를 밝혀 주십시오. 나는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절

      주의 한결같은 사랑을 늘 바라보면서 주의 진리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헛된 것을 좋아하는 자들과 한자리에 앉지 않고, 음흉한 자들과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악인들의 모임에는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악인들과 한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3-5절

    우리는 이런 시편을 읽으면 예수님의 비유에서 자신을 의롭다고 내세우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 세리야말로 진정으로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시편의 이런 탄식시들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서 오늘날에도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신앙인들은 자기의 완전함을 내세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과 구별된 삶,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자기들의 삶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고백하는 행위로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일임과 동시에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행위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따라서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옛 신앙인들도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때만 습관적으로 사도신경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도신경을 나의 신앙고백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염려와 근심은 항상 우리의 것이 되어 있으며,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항상 죽음의 공포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죄사함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우리는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은 불분명합니다. 내가 확실하게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 부활을 믿는 사람인지, 아니면 어떤 때는 믿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아닌 것 같은 어중간한 신앙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인지 확실치가 않습니다. 타종교에 대하여 적대적이고, 단군상을 때려부수는 일에 앞장 설 때 보면, 우리는 확실한 그리스도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며 살아갈 때 보면,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주일에 교회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면 분명한 그리스도인인데, 사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헷갈려 합니다.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 맞어?"

    우리는 이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우리의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옛날의 순교자들처럼 자기 신앙고백을 분명히 함으로 내가 확실히 그리스도인임을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들어내야 하겠습니다.

    정체성에 따른 불이익과 고난

    그러나 자기가 확실한 그리스도인임을 들어내는 일은 반드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고 욕을 먹고 박해와 고난을 당할 때가 더 많습니다.

    시편 13편에 보면,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탄식을 하는 이유는 그가 붙잡은 진리 혹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원수들의 비난과 조롱과 박해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난과 조롱과 박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상당히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이 '언제까지'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음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인은 너무도 오래 이런 고난을 받았기에 이제는 지친 상태에 빠졌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두 눈에 불을 밝혀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고, 그가 비틀거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져왔지만 하도 적대자들이 그를 비방하고 박해하는 바람에 그는 지금 그 신앙을 놓쳐버릴 위기에 놓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그렇게 하므로 받을 불이익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하게 밝혀서 손해 볼 일이 없고 오히려 유익한 일만 있다면, 왜 주저하겠습니까? 물론 지금 우리 사회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핍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기독교인이 25%나 되면서도 그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비기독교적이며 반기독교적입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이상하게 기독교는 지금 사회로부터 냉소와 냉대를 받고 있습니다. 국회 안에도 예수를 믿는 의원들이 112명이나 된다고 하지만, 국회의 분위기는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문선명을 데려다가 13일 국회에서 강연을 하게 했다니 기독교는 더 이상 이 사회의 강자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우리 사회 분위기가 이러니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생활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힐 때 모든 면에서 깨끗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하여야 하는데, 사실상 혼탁한 사회 속에서 혼자만 그렇게 살기는 어렵기에 그리스도인임을 감추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적당히 부정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당당하게 자기가 예수 믿는 사람임을 숨기지 않고 그만큼 거기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장로님도 공무원으로 공식 명함에 성경구절을 적어서 오랫동안 사용을 하시면서 자신이 교인임을 오히려 분명하게 들어내셨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임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막상 조사를 해 보면 기독교 신자가 각 직장에 상당히 많음에도 분명하게 들어내지 않기에 기독교인들이 연대하여 그 직장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독인 국회의원들이 분명하게 자기 신앙을 들어내면서 활동을 한다면 국회가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저들이 자기가 소속한 당의 당론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고백을 더 중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기초하여 국사를 논의한다면 보다 건설적인 국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저들은 신앙보다는 당론을 더 중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충실히 따르다 보니 기독교인 국회의원이 1백 명이 넘어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천만이 넘는다 하여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기독교인들을 종이 호랑이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역사 가운데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 많지만 그 중에 유성준 장로님 같은 경우는 그 신앙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의 신앙수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1906년 유장로님이 내부 경무국장으로 복무하는 중 그 해 음력 5월 단오절을 당하여 궁내부 장례원(宮內府掌禮院)에서 왕릉 제사에 제관으로 참석하라는 통첩을 받았습니다. 비서관이 와서 "만일 제관을 사퇴하면 면관류형(免官流刑)하는 예가 있습니다"라고 귀띰을 하자, 유장로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그리스도 신자라 면관류형(免官流刑)을 당할지언정 제관도차의 명은 봉행(奉行)치 못하겠으니 이 뜻으로 장례원에 회답하라"고 하였습니다. 영능의 제관도차는 경무국장 당직인즉 회피할 수 없다는 엄중한 통첩이 재차 오자, 비서관이 황겁하게 통첩을 가지고 와서 말하였습니다.
      "이 일은 경무국장의 지정된 의무로서 만약 거부하면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시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때 유장로님은 웃으면서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조상들에게조차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이고, 법령을 들쳐봐도 당신이 지적한 의무 규정은 없다. 만약 그러한 의무가 있었다면 나는 이 자리를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것은 장례원 안의 몇몇 사람들이 자의로 정한 것일 뿐이다. 만약 이 때문에 면관류형을 당할지라도 이 명령은 따르지 못하겠다."

    결국 이런 유장로님의 고집으로 해서 그 명령은 철회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내부 지방국장, 학부 학무국장, 내부형판, 내각 법제국장으로 있을 때에도 각능 도차제관의 통첩이 있었으나 다 사퇴하였다고 합니다. 유장로님은 자기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들어내고 언제나 당당하게 행동을 하셨던 분입니다.

    로마서 12장의 권면은 우리가 너무도 자주 읽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따라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확실하게 이 시대의 풍조에서 자신을 성별하여 하나님의 뜻 쪽에 분명하게 서라는 것입니다. 어중간하게 서서 어떤 때는 하나님 쪽으로 기울었다가 어떤 때는 세상 쪽으로 기우는 회색적인 태도를 버리고, 확실하게 세상에서 발을 빼서 하나님 편에 분명하게 서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어떤 불이익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잠시일 뿐이며, 비록 그 고난이 극심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받을 하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비록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므로 어떤 고난을 당한다하여도 우리가 의지하고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두려워할 일이 못됩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분명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들어내지 못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분명하게 성별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자긍심(自矜心)을 갖고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밝히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가 바뀌고 이 사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한국 교회 교인이 1천만이 넘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될까요? 1%도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명함을 가진 분들은 명함을 다시 만드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하나씩 선택하여 자기 직장과 직함과 함께 인쇄하십시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명함을 건네십시오. 여자분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안동교회 교인입니다" 혹은 "나는 안동교회 집사입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런 인사를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을 때 이 교회가 부흥하며 이 지역이 변화될 것입니다.

    이제 자신을 성별하여 이 세상과의 선을 분명하게 그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우리를 자기의 자녀로 보호하시고 능력으로 지키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항상 자신 있게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하시면서 떳떳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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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련된 지각을 지닌 성도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10pt; line-height:150%} <2001년 5월 27일 부활절 일곱째주일> 찬양 / 육성설교(26:46) 세련된 지각을 지닌 성도 잠 언 2: 1-12 히브리서 5:11-14 히브리서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Date2002.07.09 Views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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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두 아들의 효

    <2001년 5월 12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21:57) 두 아들의 효 잠 언 23:15-25 누가복음 15:11-32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 사랑의 비유'는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며 그가 돌아오자 기쁨으로 영접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서 모든 죄인을 용서...
    Date2002.07.09 Views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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