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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0:53

물처럼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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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바람처럼

 

  <2001년 8월 19일 성령강림절 후 열한번째주일>
  
찬양   / 육성설교(25:3)

물처럼 바람처럼
 

에스겔서     36:24-31  

요한복음       3: 1-15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 3장 5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세례를 뜻하는 것이고, 동시에 성령의 역사로 영적으로 거듭나야 함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물과 바람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영으로 번역된 희랍어 프뉴마(      )는 바람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8절에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라는 말씀에서 앞에서는 바람으로 번역되고 뒤에서는 성령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혹은 물과 바람으로 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3장은 거듭남을 강조한 말씀인데, 물에 의해서, 성령에 의해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혹은 물처럼 되고 바람처럼 거듭나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로부터 태어나면 물의 자녀가 되고 성령(바람)으로부터 태어나면 영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난 자의 삶은 물과 같은 삶, 영 혹은 바람과 같은 삶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언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물처럼 바람처럼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물과 같은 존재, 바람과 같은 삶을 이루어 가야 함을 뜻합니다. 오늘은 바람과 같은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람은 생명이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으로 번역된 부분에 "하나님의 바람"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고 주를 달았습니다. 영 혹은 바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루아흐'(   )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274회 사용되고 있는데, 쓰이는 곳에 따라 각각 다르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바람, 호흡, 정신, 영 등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루아흐'는 창조적이며 생명을 제공해 주는 능력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루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대체로 하나님의 '루아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루아흐'가 우리 속에 들어와 생명이 되고 그것은 이성과 감정, 혹은 예술적 감각으로 또는 예언적 능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예에서 발견하는 '루아흐'의 중요한 특성은 바람과 같아서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생명과 놀라운 능력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살지만, 우리 속에 드나드는 바람을 우리가 보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바람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잠시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은 끝나고 맙니다. 바람은 곧 생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숨쉬는 대기는 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을 뿐입니다. 지구를 벗어나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지구의 대기는 우리의 육체적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바람입니다. 사람들은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루아흐'는 단순하게 우리가 숨쉬는 대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인 영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구의 대기만을 호흡할 것이 아니라 영을 호흡할 것을 원하십니다. 폐만 가지고 숨을 쉴 것이 아니라 영으로 호흡할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비록 지구의 대기를 호흡하던 생명이 끊어져도 계속 영으로 살 수 있습니다.

    대기는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고 대기 가운데 산소가 있어서 우리의 생명의 귀중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러나 영의 바람은 과학으로 분석되고 밝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더욱 바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영의 세계―그래서 사람들은 그 세계를 인간의 상상의 산물로 치부하고 부정하며 무시해 버리고 맙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 안에 영을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후 사람들은 대기만을 호흡할 뿐 영의 바람을 호흡하지 않으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에스겔서 36장 26절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바람을 이스라엘 속에 불어 넣으셔서 죽어버린 영을 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 마른 뼈 골짜기 환상에서 하나님의 바람이 마른 뼈들 위에 불어오니까 저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영의 바람을 호흡할 때 진정한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올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듭나라고 하신 말씀도 공기만 호흡하는 생명에서 영을 호흡하는 생명으로 태어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람과 같은 분

    구약 성경에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은 바람과 같은 분입니다. 아니 그의 모든 역사는 그의 '루아흐'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람처럼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오고 어디로 불어 가는지 알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도 어디로부터 오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람이 부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혹은 어떤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도 잡을 수 없고 어떤 모양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했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안 계신 것 같은데, 그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면 바위에서 샘이 터져 나오고, 놀라운 생명의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지었지만 그 성전에는 그의 이름만을 둘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 지나가면서 이룬 역사의 자취들인 만나와 십계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만이 언약궤에 담겨 지성소에 보관되었습니다.

    우리가 호흡을 하지만 그 공기를 우리 속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들이쉬었다가 내 쉬므로 끊임없이 공기가 들락날락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람은 머물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어느 한 곳에 영원히 머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도 우리 속에 오셔서 생명의 역사를 이루시는가 하면 내 안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고 떠나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한 번 불고 지나가면 내게 변화가 일어나고 내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을 바울은 육이 죽고 영이 살아나는 것으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도 하였습니다.

    바람과 같은 삶

    새로운 피조물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존재가 됨을 뜻합니다.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바람과 같은 존재가 됨을 뜻합니다. 최근에 일본에 갔다가 돌아온 어느 프로야구 선수를 "바람의 아들"이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람의 자녀"들입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바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람과 같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첫째는 겸손한 삶을 뜻합니다. 어디서 불어오고 어디로 불어 가는지 잘 알 수 없는 바람처럼, 거듭난 기독인들은 자신을 들어내지 아니하는 겸손함을 지녀야 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며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나타내지 않으면서 오히려 남과 어울려 조화로운 삶을, 화해와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삶을 뜻합니다. 바람과 같은 존재란 자기를 주장하며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의 삶을 타인과 구별하려는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며 하나님의 큰 뜻을 따라 흐르는 삶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영을 따르는 바람과 같은 삶을 이루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들을 성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다른 민족 위에 뛰어난 자리를 고집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람처럼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 대열에서 낙오되고 말았습니다. 겸손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역사에서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도 이스라엘처럼 우리 스스로를 구별된 성도로 자처하면서 겸손하게 섬기는 종의 직분을 저버린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실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바람과 같은 존재로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을 변화시켜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는 특권을 누리는 자리가 아닌 섬기는 종의 자리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바람 같은 삶이란 움직이는 삶을 뜻합니다.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념에 매이고 편견에 사로 잡혀 역사를 올바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유동하는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안정된 삶을 원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몇 천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별로 변화하지 않는 역사를 살았기에 이런 역사가 우리 속에 보수적 기질을 길러 주었고, 한 번 우리 속에 자리 잡은 사상이나 이념을 좀처럼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혁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혁은 변화를 뜻하고 그 변화는 나의 삶을 흔들어 놓기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개혁에 참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군사혁명처럼 힘으로 몰아 부칠 때 어쩔 수 없이 따라갔지, 스스로 나서서 개혁을 이루려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고운 눈으로 보아주지 않습니다. 운동권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줍니다. 심지어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그가 과거에 운동권이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결국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대단히 개혁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그를 너무 과격하고 가볍다고 나무라고 그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개혁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목청 높여 부르짖지만, 막상 개혁적인 정책이나 인물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개혁을 부르짖는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혁은 피곤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을 뒤엎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 교회는 옛 틀에 안주하는 보수적 교회로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일 자체가 개혁입니다. 옛사람은 죽어야 되는 일이며,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개혁을 싫어하니 한국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바람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동쪽으로 보내시면 동쪽으로, 북쪽으로 보내시면 북쪽으로 불어 가는 바람이어야 합니다. 나는 북쪽으로 가기 싫다고 고집하고 남아있다면 그는 숨을 쉬지 않는 자요 결국 죽은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싫어도 하나님이 불어보내시는 곳으로 갈 때 거기에 생명의 역사가 움트게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바람 같은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힘을 가진 삶으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앞서 살핀 대로 하나님의 '루아흐'가 모든 생물 속에 특히 우리 인간 속에 들어올 때 생명의 약동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바람은 생명입니다. 바람이 이는 곳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바람 같은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 생명의 역사에 동참함을 뜻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제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가는 곳에 새로운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갈등과 미움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면 싸움이 그치고 화해가 이루어지며 거기에 사랑이 움트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온갖 불의와 악이 있는 곳에 생명의 바람이 불면, 그 불의는 날아가 버리고 거기에 정의의 새로운 싹이 돋아나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람이 가진 놀라운 창조력입니다.

    이런 능력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살아나고 그 영으로 하나님의 바람을 호흡할 때 우리 안에 생겨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그런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나약하기 그지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할만한 능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망국적인 지역 감정으로 극단적인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우리가 이를 치유하려 하기보다는 우리도 그 어느 한편에 서서 그 감정을 더욱 심화시켜 가고 있습니다. 더더욱 나쁜 것은 그런 지역 감정을 감추기 위해 좌우 이념으로 위장하거나 진보와 보수로 위장하여 대립을 정당화시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위장에 교회도 덩달아 함께 하면서 망국병을 더욱 심화시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한국 교회가 이 사회 속에 생명을 불어넣을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함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로잡힌 고정된 틀에서 나와 생명의 바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로 안에서 변화된 바람의 자녀가 되십시오. 그래서 마른 뼈처럼 죽어버린 이 사회 속에 생명의 바람을 불어보내야 하겠습니다. 영의 호흡을 하지 못하므로 죽어 있는 교회 속에 생명의 바람이 되어 교회를 일으키고 교회를 개혁하는 바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영과 함께 흐르는 바람이 되십시오. 나를 주장하고 내 편견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를 따르십시오. 그가 불어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거기에 생명의 싹을 트게 하고 사랑의 역사를 일구는 바람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바람과 같은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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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5월 12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21:57) 두 아들의 효 잠 언 23:15-25 누가복음 15:11-32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 사랑의 비유'는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며 그가 돌아오자 기쁨으로 영접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서 모든 죄인을 용서...
    Date2002.07.09 Views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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