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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10:56

부족함이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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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없는 삶

 

  <2001년 9월 2일 감사절 첫째주일>
  
찬양  / 육성설교(26:58)

부족함이 없는 삶
 

시      편    145: 9-16  

사도행전       4:31-35  

     

    우리가 한 평생 살면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 채 산 적이 있을까요? 특히 해방과 6 25 전쟁을 겪으면서 가난하게 살았던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가 발전하여 사람들이 잘 살게 되었다고 하는 7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항상 가난하다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늘 부족한 삶 속에 살기에 불만스럽고, 항상 더 가지려는 욕망 때문에 마음이 편치를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망하지 않는 장사 가운데 하나가 식당입니다. 그렇게 많은 식당이 생겨도 장사가 되는 것은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너무 배고픈 시절을 살았던 우리에게 먹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잘 살게 된 지금도 우리는 모든 일을 먹는 것을 위주로 합니다. 회의를 해도 식당에서 하거나 아니면 마친 후 식당으로 몰려갑니다. 동창 모임을 비롯한 각종 모임이 모두 식당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뷔페 식당은 인기가 있어서 어디서나 성업입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갖다가 먹을 수 있으니 배고팠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 한 턱을 낸다고 할 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푸짐한 음식을 대접함을 뜻합니다. 결국 이런 현상은 아직도 우리가 배고팠던 시절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것에서 우리는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부족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인구는 증가되는데 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식량이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이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보니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들은 날로 증가되어 지구촌의 부족현상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펼쳐 읽으면 거기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를 듣게 됩니다. 오늘 읽어 드린 사도행전 말씀에 보면 모든 사람이 넉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34절에 보면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오순절 당시 예루살렘 경제가 하루아침에 좋아진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예수를 믿은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 있을까? 부자들만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런가? 오순절 이후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일어난 현상들이기에 여기서 가난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경제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체험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창조적인 영, 살리는 영이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땅이나 집을 팔아 그 돈을 모두 헌금하였기에 오히려 가난해졌지만, 사람들은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넉넉하였습니다. 여기에 오늘의 부족 현상을 극복할 비결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세계인이 느끼는 부족 현상은 지구가 50개가 있어도 다 채울 수 없는 것이기에 경제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이 부족 현상을 해결하여 주셨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새로운 영을 일으키시고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명의 충만함을 얻어 부족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부활의 은혜

    본문 33절에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그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이 놀라운 사실을 '큰 능력으로' 증언하자 모여온 많은 신도들이 모두 큰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답답하게 막혀있던 좁은 삶에서 해방되어 영원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죽음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큰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몰트만은 죽음이 모든 부족의 원인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부족하다는 것은 생명 자체를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큰 결핍, 절대적인 결핍은 죽음이다. 우리가 생활 가운데서 느끼고 겪는 모든 다른 결핍은 죽음과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죽음이 삶으로부터 빼앗아 가는 것이다.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생명을 누려도 우리에겐 만족함이 없다.

    현대인들의 갈증(渴症) 현상은 알게 모르게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지배당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100년 미만의 짧은 생애이기 때문에 그 안에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권력도 명예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빨리빨리 모든 것을 쟁취하라고 우리를 부추기는 바람에 사람들은 정신 없이 뛰면서 닥치는 대로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많은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얻은 사람이야말로 성공한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린 사람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목표로 너도나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갑니다. 이런 욕망을 불태우면서 달려가는 세계는 모든 인간 공동체를 깨트리며, 민족과 민족을 대립시키며, 나라와 나라가 싸우게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대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비극입니다. 죽음 그 자체가 불행이 아니라 그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만들어내는 이 분쟁하는 세계가 불행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속이고 있는 죽음의 문제를 독생자의 십자가를 통해 해결하시고 부활을 통해 죽음은 단순하게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는 관문일 뿐임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모든 결핍의 근원인 죽음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해결되었다는 사도들의 부활의 증언은 모든 신도들에게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순절의 교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부활 신앙은 바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결핍증(缺乏症)을 일거(一擧)에 해소(解消)하는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부활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삶에 들어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고군분투(孤軍奮鬪) 하는 대신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주어진  책임을 여유 있게 감당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한 가난한 자가 아니라 이제는 모든 것이 넉넉한 여유 있는 삶을 통해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이 부활 신앙을 통해 초대교회의 넉넉한 삶을 오늘에 실현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마음 한 뜻

    다음으로, 32절에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진 하나의 공동체가 탄생하였다는 기록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을까요? 그것은 31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들이 기도를 마치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고,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바로 많은 사람을 한 마음과 한 뜻을 갖도록 이끄시는 영임을 알게 됩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을 갖는다는 것은 더 이상 분쟁하고 분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분쟁하고 분열하는 것은 각자가 욕망을 따라 행동하기 때문인데, 그것을 그치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은 더 이상 욕망을 따르지 않음을 뜻합니다. 욕망을 따라 분주하게 뛰었던 삶이 어리석음이었음을 깨닫고, 그것을 포기한 순간 사람들은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고, 삶의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그들에게 열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심에 의한 창조, 타락한 피조계를 회복하시는 구원, 그 모든 세계를 넉넉하게 아름답게 이끄시는 그의 섭리(攝理), 무엇보다 풍성한 그의 사랑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성령은 이런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게 하므로 더 이상 서로를 경쟁 상대로가 아닌 형제와 자매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넉넉한 세계 속에 들어가므로 사람들은 모두 불타는 전의(戰意)를 버리고 여유와 사랑을 회복하고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가 느꼈던 결핍증은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성령의 임재를 통해 그 하나님을 다시 뵈올 수 있게 되면서 우리의 모든 결핍증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몰트만은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 안에 임재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분으로 우리의 생명 안에 임재한다. 무한하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그의 생명이 제한 받고 상처 입기 쉽고 죽어야 할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고 침투한다. 모든 영적 지식, 모든 감정적 흥분, 육체의 모든 욕구와 충동과 함께 우리는 용납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면, 우리의 치열했던 욕망 대신에 사랑과 평화가 자리 잡게 되면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따르는 한 마음 한 뜻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 교회 안에 성령이 임재하셨는지를 알려면 바로 우리가 얼마나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졌던 세상을 향한 욕망이 사그라지고 여러분 속에 여유가 깃들었다면 성령이 임재하신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심으로 늘 감사에 넘친 삶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누는 공동체

    끝으로, 다시 32절을 보면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내어놓은 일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가 소유하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자기 소유를 내놓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은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더 이상 욕망을 따라 살 필요를 느끼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소유에 대하여 집착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재물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확실하게 지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안에 있어 이 땅의 삶과 영원한 삶을 확실하게 보장을 받은 사람은 더 많은 소유를 얻으려고 할 필요가 사실상 없어졌습니다.

    특히 초대교회는 그냥 소유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내어놓아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다고 하였습니다. 즉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오히려 더 풍성함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혼자 소유하였을 때는 부족하였던 것이 함께 나눌 때는 부족함이 없이 모두가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공동생활의 놀라운 장점입니다.

    오늘 도시의 발달은 핵가족화를 이루게 만들어 대가족제도 하에서 맛보았던 가족 공동체의 유대감과 생활의 절제를 잃어버렸습니다. 핵가족화는 우리의 소유욕을 더욱 부채질하였고, 반면에 우리의 물질과 시간과 정력을 더욱 낭비하게 하였습니다. 가령 3대가 함께 살 경우 큰 집 하나면 집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모든 가구도 중복되게 살 필요가 없으며, 밥 짓고 빨래하는 일 등 가사도 서로 분담하므로 노동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애기도 서로 돌보아 주므로 육아비도 절약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는 많은 유익함이 대가족제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므로 아파트를 아무리 지어도 모자라며, 시간도 물질도 항상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지향적인 종교입니다. 우선 대가족화를 다시 회복함에서 시작하여 여러 가정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금 세계 여러 곳에서 이 공동체 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공동체를 만들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실상 교회의 이상은 교인들이 모두 함께 모여 같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인데,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 생활은 헌금을 함으로 일종의 공동체적 성격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작은 운동에 불과하고 보다 중요한 공동체성을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나가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피조물이 모두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는 세계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공동체 훈련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는 그 기회를 모두 놓치고 있습니다. 산업화의 물결에 밀리면서 교회는 공동체 지향적 성격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의 문제이며, 개혁되어야 할 근본적인 과제입니다. 오늘의 도시 교회들이 아무리 공동체성을 강조해도 핵가족에 익숙한 교인들이 공동체성을 이해할 수 없고 그 생활을 받아드리는 것은 더더욱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카톨릭교회가 사제들의 결혼을 금지시킨 것은 한쪽으로 보면, 문제가 있지만,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일에는 아주 유익한 제도라고 봅니다. 가정이 아닌 교회를 위한 헌신이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에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카톨릭 교회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가는 것도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힘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개신교회는 모두가 독립된 교회나 마찬가지여서 결집된 힘을 만들어 낼 수 없고 따라서 효과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개신교의 약점입니다.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지는 못하지만 소유욕을 버리므로 절제하고 함께 나누는 삶을 생활화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이 교회가 든든하게 서면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받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메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망 때문에 자신을 낭비하지 말고 생명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서 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부활 신앙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맛보고, 그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여유 있는 삶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모든 만물을 은혜로 맞아 주시며,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긍휼을 베푸신다"고 하신 시편 145편의 말씀을 기억하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제 개인화 되고 핵가족화 된 여러분의 삶을 반성하고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공동체적 정신을 키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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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련된 지각을 지닌 성도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10pt; line-height:150%} <2001년 5월 27일 부활절 일곱째주일> 찬양 / 육성설교(26:46) 세련된 지각을 지닌 성도 잠 언 2: 1-12 히브리서 5:11-14 히브리서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Date2002.07.09 Views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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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두 아들의 효

    <2001년 5월 12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21:57) 두 아들의 효 잠 언 23:15-25 누가복음 15:11-32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 사랑의 비유'는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며 그가 돌아오자 기쁨으로 영접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서 모든 죄인을 용서...
    Date2002.07.09 Views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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