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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7일 주현절 첫째주일> 생명문화를 가꾸는 교회 창 세 기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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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금년 일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가 주시는 건강과 물질과 지혜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어가기 위하여 헌신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 우리 교회의 주제를 <생명문화를 가꾸는 교회>로 정하였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향후 5년간 우리 교회의 큰 주제는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은 금년부터 시작되는 21세기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세계가 이 생명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또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생명문제가 21세기의 화두(話頭)가 되는 것은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생명복제나, 인간 게놈 프로젝트 같은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에 의한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기에 대단히 두렵고 위험한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새로운 발견에 의해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새로운 것들을 개발하므로 환경 파괴와 더불어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생명 복제나 인간 게놈 프로젝트도 그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순전히 경제적 이윤만을 앞세운 개발이 될 것임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이 제기한 문제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화는 바로 우리의 삶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구조조정을 비롯한 경제적 혼란은 비단 우리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농어촌민들의 삶이 무너지고, 도시 실직자들이 늘어나면서 가정들이 파괴되고 이혼이 증가하며, 청소년들이 길거리로 나돌고, 어린 딸들이 윤락녀로 팔리는 정말로 무서운 삶의 파괴와 혼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과거 도덕적 권위나 윤리적 계명으로 막을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생명이 무참하게 짓밟혀 깨어지는 세기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경제의 세계화는 가난하게 살던 사람들로 하여금 너도나도 다같이 잘 살겠다는 의욕을 갖게 만들어 모두가 한결같이 경제 성장을 추구하게 됩니다. 지금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 중국의 10억 인구가 모두 수세식 변소를 갖고 모두 자동차를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그때가 되면 한반도의 하늘은 중금속을 머금은 희뿌연 매연으로 덮여 개일 날이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이 땅에 살 수 없어 해외로 모두 이민을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쯤이면 후진국들이 모두 나서서 경제 개발을 이룬 후여서 오염되지 않은 하늘과 땅을 가진 나라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엄청난 자연의 파괴와 심각한 오염으로 지구는 중병에 걸릴 것입니다. 이 모두가 생명과 관계된 문제들입니다. 이런 인간의 무모함 때문에 인간의 생명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계의 모든 생명이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명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이 거대하게 흘러가는 물질문명의 물결을 거슬려 생명을 회복하는 운동,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의 본래적 사명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그의 몸인 교회도 생명을 살리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하려면 우선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생명 회복 운동도 크게 다른 모습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로 생물학에 배운 대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모든 생물체가 가진 그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물체만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고 그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은 궁극적으로 그 세포 속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세포만 따로 떼어놓으면 그 생명은 곧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생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세포들이 모여서 어떤 생물체 즉 나무나 개나 사람을 이룰 때 거기에 생명이 있어서 살아 움직이니까 그런 것들을 생명을 가진 최소 단위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포들을 따라 떼어놓으면 죽는 것처럼, 그 생물체들도 따로 떼어놓으면 죽어 버립니다. 사람의 경우 혼자 살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 위의 생명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태양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햇빛을 받아서 식물들이 살고 그 식물들을 동물들이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 생명은 우주 속에 깃들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대 장회익 교수는 이를 '온생명'(Global life)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온생명'이 바로 생명의 단위라는 것입니다. '온생명'이 생명의 단위라는 것은 '온생명'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생명이란 뜻입니다. 생명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새로운 관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온생명'은 그 자체로 생존할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온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없이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온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 '온생명'은 곧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단위는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 안에 그가 지으신 만물의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서 만물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생명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죽지 않고 끝없는 시간 동안 생명이 계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만물이 하나님의 생명에 합일되어 이룬 생명을 뜻합니다. 만물이 하나님과 온전한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 이루어지는 생명이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생명에 대한 오해 자 이렇게 볼 때 생명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 생명을 육체적 생명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것을 죽는다고 말하고 그 죽음으로 사람의 생명은 끝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대부분도 육체의 생명과 영생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살아 있을 때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영생을 누린다고 믿습니다. 즉 육체의 생명과 영생을 서로 다른 생명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혹은 두 개의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육의 생명의 세계와 영생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육의 생명과 영생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입니다. 육의 생명은 영생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육체의 죽음이 육의 생명과 영생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서 온전한 생명으로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또 하나 생명에 대한 오해는 개체 생명이 생명의 최종 단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경우 내가 생명의 단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이나 다른 생물체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틀 안에서 사는데 반해 사람은 그런 유기적인 관계를 깨트리고 개체로 독립하여 자기만을 위하여 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현상으로 이런 개체화가 하나님의 생명의 체계를 모두 흩어놓고 있습니다. 나의 생명을 온생명에 연결된 생명 혹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 생명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거기로부터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죄악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을 우리의 생명과 연결된 또 다른 생명체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의 먹을거리로만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자연을 우리 생명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정복하고 개발하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현대인에 비하면, 아메리카 인디안 들의 생각은 훨씬 성경적입니다. 1854년 미국 대통령이 보낸 백인 대표자들이 인디언 부족이 전통적으로 살아온 땅을 팔 것을 제안하였을 때 그 추장이 한 연설문이 있는데, 그 중 한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 그렇습니다. 향기로운 꽃을 그들의 자매로, 사슴, 말, 큰 독수리를 그들의 형제로 생각하였던 인디언들이야말로 생명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오늘 읽어 드린 구약 창세기 2장 말씀에 보면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생명의 기운을 우리 속에 불어 넣으셔서 우리가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온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의 존재는 하나의 세포와 같은 존재입니다. 세포와 세포가 서로 연결이 되어 그 기능을 올바로 할 때 전체 몸이 건강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공동체를 이룰 때 온전한 생명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말씀에 보면, 태초부터 계신 생명이 나타나셨고 그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본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생명을 교회에 선포하는 것은 교회로 하여금 아버지와 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갖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 말씀도 우리의 생명이 이 영원한 생명에 합일되게 하는 것이 바로 말씀을 선포하는 이유이며 예수를 믿는 이유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문화를 가꾼다고 말할 때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영원한 생명에 연결된 우리의 삶을 인식시키고, 나의 개체 생명을 보존하는데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전체 생명을 돌아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 중심의 생명문화에서 하나님 중심의 생명문화로 바꾸는 일이 바로 교회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어떤 윤리적 덕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현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영원한 생명에 합일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반드시 사랑해야만 나의 생명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은 생명을 위한 필수적인 생명운동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이 땅의 삶과 영원한 생명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임을 인식하고 이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영생에 들어간 자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의 삶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큰 영생을 살면서 크게 계획하고 여유 있게 살며 욕심부리지 않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 때문에 미워하고 갈등하며 싸우던 죽음의 문화를 바꾸어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생명문화를 가꾸기 위하여 기도하고 공부하며 헌신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