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1년 1월 14일 주현절후 둘째주일> 생명문화를 가꾸는 책임 창 세 기 1:26-31 |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 인간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창세기 1장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 또는 '창조의 꽃'이라고 말합니다.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인간보다 뛰어난 동물들도 많이 있지만, 그 동물들에게는 없는 생각할 줄 안다든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든지 하는 면에서 뛰어난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신 것은 그가 창조하신 세계를 잘 관리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는데, 인간은 오히려 그 뛰어난 능력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세계를 파괴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만물의 영장이란 말은 선한 통치자라는 개념보다는 피조세계를 마구 짓밟은 폭군이란 말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창조의 꽃이 아니라 그 세계를 더럽히는 '창조의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런 오만을 돌아보고 회개하여야 하며, 돌이켜 이제는 겸손히 그 주어진 책임을 올바로 감당하여 하나님의 생명세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일에 참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특별하게 창조하신 목적을 찾아보고 타락하여 오히려 그 사명을 저버린 인간의 오만을 반성하고 새롭게 생명문화를 가꾸어 가야할 사명을 다져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우주를 창조하셨는데, 대개는 "있으라"는 말씀 한마디에 그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 주변의 어떤 영적 존재들과 혹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의논하시는 것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우선 하나님의 형상(形象)대로 사람을 만들기로 하셨다고 하였고,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바로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하여서입니다. 옛날에 왕이 넓은 땅을 점령하여 나라를 크게 하였을 때 그 넓은 영토를 친히 다 다스릴 수가 없어서 왕의 형상을 여러 지방에 만들어 세워놓으므로 그 땅이 바로 그 왕의 통치 아래 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왕의 형상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 동상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반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을 이 땅에 나타내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릴 책임과 특권이 있음을 뜻합니다. 인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 뜻을 받아서 이 땅을 다스릴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 속에서 그대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야 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좋게 창조된 세계를 하나님을 대신해서 잘 가꾸고 다스려야 할 책임이 그대로 주어졌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일부 나누어주신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뜻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통하여 그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뜻을 받들어 이 땅을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귀를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속에 주셨음을 뜻합니다.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주어진 책임을 올바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돌이나 구리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간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만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뜻입니다. 고정된 나무나 돌로 만든 형상 대신에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그대로 들어내는 삶이어야 하고, 이 땅의 모든 생명에게 하나님처럼 보이게 행동해야 함을 뜻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은 존재이며, 언제든지 그의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우리가 그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지음 받은 존재임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을 열어놓고 있어야 되는 존재임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을 열어 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 어느 때 말씀 하실찌라도 늘 들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요즈음 휴대전화를 누구나 가지고 다닙니다만, 젊은 사람들 휴대전화는 24시간 열려 있어서 언제든지 전화하면 연결이 됩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비싼 휴대전화를 사주는 것은 그 전화를 통해서 자녀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과 그가 지으신 만물을 향하여 항상 열려 있어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 늘 응답하며, 비상신호가 울릴 때 얼른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사실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인간은 확실히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도 다른 어떤 동물들이 아닌 바로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음은 바로 인간이야말로 모든 피조물 가운데 특별하게 창조된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맡겨진 책임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자기의 형상을 따라서 특별한 존재로 만드신 까닭은 성경에서 보는 대로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위의 구절에서 항상 문제되는 것은 '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정복'이란 말 때문에 인간이 기술을 통해 자연을 착취하게 되었다고들 흔히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죄악을 합리화시킨 말에 불과합니다. 전체적인 문맥을 보면 이 말이 결코 자연을 착취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복'의 개념은 목자의 역할과 관련 있는 것으로 모든 다른 피조물들의 안녕(安寧)을 회복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이 열매를 맺게 해주는 역할을 뜻합니다. 즉 목자들이 양떼를 돌보는 것처럼 이 땅을 돌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다스리라'는 말의 개념도 '지배한다'라든지 혹은 '통치한다'라는 뜻보다는 '섬긴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기독교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도록 하신 것은 바로 그들의 생명이 원활하게 순환되도록 섬기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통치권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았지만, 그 통치는 지배나 정복이 아닌 돌봄이며, 섬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셔서 그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의 협력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창조의 협력자란 말할 것도 없이 창조된 생명을 돌보며, 생명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여 하나님의 생명의 세계가 전체적으로 건강하도록 일을 하는 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면서 창조의 협력자가 되도록 그 사명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여야 하며, 동시에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한 가지를 위하여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의 죄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사명과 책임을 떠맡은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아 그 뜻을 따라 섬겨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렸던 마음의 창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독립적인 존재로 떨어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야 할 인간이 그 문을 닫아버리므로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을 무시하면서 자기 멋대로 지배와 착취를 일삼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돌보고 섬겨야 할 그의 사명을 저버리고 오히려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그 세계를 마음대로 정복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며 파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로서의 사명을 잊어버리면서 자기 육체를 위한 욕망을 끝없이 확대하는 데만 급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것은 그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창조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이 끝나면 꽃이 떨어지듯 우리의 육체의 생명도 끝나게 됩니다. 따라서 육체는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서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우리가 잠시 머무는 거처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본질은 그 육체에 있지 아니합니다. 그 육체는 어차피 꽃이 피듯 아름답게 피어났다가 시들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육체를 위하여 아름답게 가꾸고 거기에 필요한 물질을 탐욕스럽게 모으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이 육체를 위하여는 무엇이든지 최소한도로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협력하는 사명을 완수하는 것에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면서 하나님께 연결되었던 생명의 줄이 끊어졌고, 그 형상이 깨어져 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되었으며, 따라서 자기의 사명을 잊어버린 채 인생의 목적을 자기 육체를 만족시키는 일에 두게 되었습니다. 육체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모으기 위해 사람들은 불철주야 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일하지만 결국은 자기 육체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죄를 지은 인간들은 과거 멀리 바라보던 세계를 잃어버리면서 찰나적인 시간을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세계를 넓게 보던 시야를 잃어버리면서 자기만을 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하늘을 보았고,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으며, 위의 것을 찾았지만, 타락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났으며, 하늘을 다시는 보지 않고 오직 땅만을 보며, 그 땅을 착취하여 자기 만족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의 이런 죄로 말미암은 삶은 하나님의 생명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며, 이 땅에 죽음을 불러 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들을 가지고 기계를 만들어 내고, 그 기계로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더 나아가 생명공학을 통하여 생명의 질서를 마구 뒤흔들어 놓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 세계는 더욱 무서운 죽음의 공포로 뒤덮이게 될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된 새 사람 이런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전체 생명의 세계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아니할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는가 하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는 대신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지금 인간의 삶이 모두 거꾸로 되어 있음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지금은 우리 떡으로만 살려하고, 썩을 양식만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데, 그것은 삶의 길이 아닌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임을 깨우치면서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해서, 즉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생명의 본질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오늘 골로새서 3장 말씀에서도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고,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쏟아내는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모두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새 사람은 결국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을 뜻합니다. 잃어버렸던 영성을 되찾아 다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고 마음문을 열어 거기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뜻을 헤아리고 겸손하게 그 뜻을 받들어 생명의 역사를 일구어 가는 것이 바로 새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들을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문을 활짝 열어 놓으십시오. 나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땅만을 보던 눈을 들어 이제는 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만을 생각하던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웃을 돌아보며 자연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큰 생명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찰나적인 향락 도취에서 깨어나 영원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생명문화를 가꾸는 책임을 기억하면서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기도하며 실천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고귀한 생명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며, 그 사랑을 나타내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