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 | 이전설교자료                     

2002.07.10 17:03

틀(paradigm)을 바꾸자

조회 수 133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2001년 3월 25일 사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26:02)

틀(paradigm)을 바꾸자

시      편      1: 1- 6

요한복음      6:60-64

     

    우리는 누구나 이 시대를 살면서 사물을 보고 이해하는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영어로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김경재 교수는 패러다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패러다임'은 어떤 공동체가 일정한 시대 속에서 자연, 사회, 세계, 경전 또는 '진리'를 이해하는 해석학적 틀, 이해의 문법, 사물을 보는 눈'이다

    우리는 '패러다임'이란 말을 알거나 모르거나 그 시대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틀을 함께 가지고 사물을 보고 있습니다.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던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차림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울 거리에서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사람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의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2, 30년 전 결혼식 사진을 꺼내 보게 되면 왜 그렇게 촌스럽게 보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때와 지금 우리의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물을 보는 틀은 그 시대마다 다르고 또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틀이 있는가 하면, 그 시대 전 세계가 함께 갖는 틀이 있기도 합니다. 동서 냉전 시대에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틀과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큰 틀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은 그 틀을 벗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이념의 틀과는 달리 자연과학의 이론에 의한 틀이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장악하고 있기도 합니다. 코페르니쿠스라는 과학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지구를 평평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온 이루 사람들은 대체로 진화론에 입각하여 자연을 보고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항하여 창조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기독교인들은 창조론을 그 사고의 틀로 받아드리고 있어서 진화론과 대립적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틀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요즈음 남자들은 상투를 틀지 않으며 여자들도 쪽을 짓지 않습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우리의 머리 모습이 바뀐 것입니다. 또 요즈음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정도가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습니다. 정보시대로 넘어 오면서 패러다임이 바뀌고 거기에 따라 우리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틀을 누가 바꾸는 것일까요? 대체로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지기도 하고 어떤 위대한 과학자의 발명이나 이론이 정립이 되면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들은 보수적이어서 좀처럼 그 틀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틀을 바꾼다는 것은 삶의 큰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그 틀을 바꾸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오래 동안 '반공'이란 틀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이제 남북 교류를 위한 물꼬를 트면서 좀처럼 이 틀을 버리려 하지 않습니다. 과거 서로 싸우던 때와는 달리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통일을 목표로 나가야 하는 시대에 이르렀으면 과거 반공의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마련하여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 과도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시대에 살면서도 역사의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나 시인, 또는 선각자들은 다른 사람들에 앞서 지난날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틀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한 채 옛 틀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경고를 주며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나가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선각자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새로운 역사를 앞서 가게 됩니다.

    하늘 나라를 포함하는 새로운 틀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틀 즉 패러다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는 까닭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이제까지 사람들이 갖고 있던 삶에 대한 큰 틀을 완전히 바꾸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하여서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밤중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자, 사람이 한 번 태어났다가 어떻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틀을 바꾸도록 요청하셨는데, 그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패러다임과 니고데모의 패러다임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많은 하늘의 비밀들을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반해 니고데모는 이 땅에서 태어난 이 땅의 것만 배운 사람이기에 그 틀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빵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고 하시자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여럿이 이 말씀을 듣고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시각에서 말씀을 하셨는데, 듣는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은 육적 관점을 가지고 들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어렵고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일을 말씀하시고 사람들은 땅의 생각을 가지고 그 말씀을 듣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서로 패러다임이 다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보다는 예수님을 떠나가 버리는 쪽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

    제자들도 아직은 그들의 틀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그 틀을 바꾸려고 노력하였고, 결국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마침내 이 땅만이 아닌 하늘 나라를 볼 수 있는 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틀을 깨신 예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이 땅의 삶에 국한된 생각과 더불어 율법주의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틀은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과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셨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상당한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  (요 8:23)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주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를 귀신들렸거나 정신이상자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게 될 것을 즐거워하였으며, 마침내 보고서 기뻐하였다"라고 하시자 유대 사람들이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라고 거칠게 항의하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있기전부터 내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렸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돌을 들어서 예수님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몸을 피해서 성전 바깥으로 나가셨습니다(요 8:56-59).

    요한복음에 나타난 생명과 관련된 모든 말씀도 틀이 바뀌기 전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아직도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거듭나서 새로운 관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버리지 못한 또 하나의 틀은 바로 율법주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런 율법주의에 의한 위선을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형식 안에 머물면서 본질을 버린 율법주의의 그릇됨을 곳곳에서 지적하셨고, 이 때문에 계속적으로 유대인들과 충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율법을 폐기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 즉 새로운 틀에서 그 율법을 받아 드릴 것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율법을 자기들만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예수님은 그것을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법으로 바꾸시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요약하셨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도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율법을 파괴하려는 자로 여기고 그를 잡아서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틀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틀은 필요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 틀 밖에 있는 것은 받아 드리지 않고 무시하거나 부정해 버리는 잘못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은 틀 속에서는 작은 벽돌밖에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나 이념의 틀이 작으면 우리는 자칫 옹졸하고 편협한 보수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 틀이 작을수록 그 공동체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진 좁은 율법주의라는 틀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배척하고 죽여 버렸습니다.

    구약 성경 욥기는 까닭 없이 고난 당하는 욥과 그의 친구들의 대화를 담은 책으로 욥을 찾아온 세 친구들은 한결 같이 '인과응보' 즉 죄를 지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다는 이 한 가지 틀을 가지고 욥의 고난을 그 안에 넣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것을 거부하고 또 다른 틀을 찾았던 것입니다. 결국 욥과 그의 친구들은 그 고난을 통해서 자기들이 이제까지 확고부동한 틀로 간직하였던 교리를 깨고 새롭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욥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뵈올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미완성인 새로운 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전에 가졌던 사고나 이념의 틀을 버리고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세계와 인생을 새롭게 보고 있음을 뜻합니다. 전에는 우리가 이 땅의 삶만을 알았고, 그것만을 위하여 살았지만, 예수를 믿으면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나만을 위하여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았지만, 이제는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면서 그 가치관이 바뀌고, 그 생각의 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미완성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옛날에 가지고 있던 틀을 버리지 못한 채 그것으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있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시편 1편 말씀을 오늘 본문으로 택하였는데, 복있는 자의 길과 악인의 길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복 있는 자는 악한 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지 않으면서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자로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그 행사가 다 형통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잘못하면 옛날 사고의 틀을 가지고 해석하기 쉽습니다. 즉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 복을 받아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이 땅의 삶만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뀐 패러다임은, 이 땅의 삶은 지극히 적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보다 크고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틀에서 이 말씀을 보면, 모든 행사가 형통한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그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게 되는 일이야말로 형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에서 가지가 원줄기에 붙어 있어서 그 생명을 나누어 받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사고의 틀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이 땅에서 무엇인가 얻고 여기서 잘 되는 것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옛날 틀을 버리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시편을 읽다 보면, 의인들의 탄식시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 땅에서는 고난을 당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악인들이 번영을 누리는 것을 보게 되면서 회의를 갖게 됩니다. 이 땅의 삶만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정말 불공평하고 잘못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런 하나님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고 까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믿는 자리에서 보면, 이 땅의 고난은 잠시일 뿐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크고 중한 영광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삶에서 복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이 다음에 당연히 받을 것이니 그것은 별로 그렇게 값있는 은혜로 생각하지 않고, 오늘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잘 되고 복 받는 것이야말로 예수를 믿는 큰 목적이며, 보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5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우리는 스스로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육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들이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겉틀은 그럴싸하게 만들어졌으나, 영적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속틀은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하고, 그 안에 여전히 지금 여기서 복 받기를 원하는 속물적 욕망만이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속물적 욕망의 틀을 깨트리고 이 땅에서는 가난하여도 영원한 나라의 썩지 않는 기업을 바라보면서 기뻐할 수 있는 영적 틀을 마련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직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속물적 욕망의 틀을 깨트리십시오 그리고 성령께서 새롭게 여러분 속에 넣어주시는 하늘 나라의 영적 틀을 받아 드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성결해지고 진리를 사랑하는 거룩한 삶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은 바로 여러분 속에 아직도 깊숙이 자리 잡은 욕망의 틀을 깨트리는 기간이며,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거기로부터 오는 놀라운 영적 선물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을 통하여 더욱 분발하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분명하게 바라보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어린이를 위한 참교육

    <2001년 5월 5일 부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21:14) 어린이를 위한 참 교육 시 편 24: 1- 6 마태복음 18: 1-10 싱그러운 오월의 가장 좋은 날이 어린이 날이고 첫 주일이 어린이 날인 것은 아주 잘 정해진 일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들은 우리 가정과 우리 사...
    Date2002.07.09 Views1307
    Read More
  2. 영적인 몸으로의 변화

    <2001년 4월 29일 부활절 셋째주일> 육성설교(24:48) 영적인 몸으로의 변화 시 편 16: 5-11 고린도전 15:35-49 사도 바울의 전도로 세워진 고린도 교회는 활발하게 모이는 교회이기는 하였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내 파벌이 ...
    Date2002.07.09 Views1273
    Read More
  3. 부활 후의 제자들의 변화

    <2001년 4월 22일 부활절 둘째주일> 육성설교(26:31) 부활 후의 제자들이 변화 예레미야 23: 5- 8 마가복음 16: 9-20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그 십자가와 부활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게 된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입니다. 그 이전에는 전혀 다른...
    Date2002.07.09 Views1661
    Read More
  4. 부활에 이르려면

    <2001년 4월 15일 부활주일> 육성설교(21:51) 부활에 이르려면 이사야서 25: 6- 8 로 마 서 6: 3-11 죽음과 죄의 권세가 깨어지고 참 생명과 진리가 부활한 이 부활절에 부활 생명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 신앙의 기쁨 부활 신앙은 ...
    Date2002.07.09 Views1204
    Read More
  5.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

    <2001년 4월 8일 고난주일> 육성설교(23:12)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 이사야서 53: 1- 6 요한복음 19: 1-16 오늘은 종려 주일로 고난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동안 교회가 종려주일로 지키면서 막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설교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
    Date2002.07.09 Views1198
    Read More
  6. 성도의 코이노니아

    <2001년 4월 1일 사순절 다섯째주일> 육성설교(26:21) 성도의 코이노니아 시 편 37:27-31 고린도전서 12:12-27 저는 연초부터 생명에 관한 설교를 계속하면서 우리가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야 하며, 이 땅에서 누리는 생물학적 생명보다 더 넓은 영...
    Date2002.07.10 Views1232
    Read More
  7. 틀(paradigm)을 바꾸자

    <2001년 3월 25일 사순절 넷째주일> 육성설교(26:02) 틀(paradigm)을 바꾸자 시 편 1: 1- 6 요한복음 6:60-64 우리는 누구나 이 시대를 살면서 사물을 보고 이해하는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영어로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김경재 교수는 패러다임을...
    Date2002.07.10 Views1339
    Read More
  8.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2001년 3월 18일 사순절 셋째주일> 육성설교(25:24)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이사야서 55: 1- 3 요한복음 6:28-40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특별히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들이 있습니다. 가령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읽는 것보다는 요...
    Date2002.07.10 Views1528
    Read More
  9.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2001년 3월 11일 사순절 둘째주일> 육성설교(25:24)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스가랴서 14: 9-11 갈라디아서 3:23-29 오늘 읽어 드린 갈라디아서 본문에 보면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
    Date2002.07.10 Views1422
    Read More
  10.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3월 4일 사순절 첫째주일> 육성설교(19:26)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스바냐서 3: 9-13 에베소서 4: 7-16 교회 창립 92주년을 맞이하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
    Date2002.07.10 Views1535
    Read More
  11.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2월 25일 주현절후 여덟째주일> 육성설교(25:58)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 잠 언 3: 1-10 디모데후서 2:14-17 오늘 우리 교회 출신으로 각급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
    Date2002.07.10 Views1385
    Read More
  12. 영생을 위한 투자

    영생을 위한 투자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2월 18일 주현절후 일곱째주일> 육성설교(24:27) 영생을 위한 투자 시 편 90: 1-12 로마서 8:12-17 오늘 읽어 드린 시편 90편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삶...
    Date2002.07.10 Views1291
    Read More
  13. 겉사람과 속사람

    겉사람과 속사람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2월 11일 주현절후 여섯째주일> 육성설교(29:41) 겉사람과 속사람 예레미야서 31:31-34 고린도후서 4:16-18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과 5장에서 변화된 그리스도인...
    Date2002.07.10 Views1628
    Read More
  14. 생명의 본질인 사랑

    생명의 본질인 사랑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2월 4일 주현절후 다섯째주일> 육성설교(23:19) 생명의 본질인 사랑 호세아서 2:14-20 요한일서 4:11-21 사랑의 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이 없으면 내가 ...
    Date2002.07.10 Views1354
    Read More
  15. 참 생명

    참 생명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1월 28일 주현절후 넷째주일> 육성설교(25:22) 참 생명 시 편 16: 5-11 요한복음 5:24-29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Date2002.07.10 Views1167
    Read More
  16. 함께 가꾸는 생명

    함께 가꾸는 생명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1월 21일 주현절후 셋째주일> 육성설교(23:58) 함께 가꾸는 생명 신 명 기 18: 1- 5 요한복음 12:24-26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
    Date2002.07.10 Views1167
    Read More
  17. 생명문화를 가꾸는 책임

    생명문화를 가꾸는 책임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1월 14일 주현절후 둘째주일> 육성설교(25:29) 생명문화를 가꾸는 책임 창 세 기 1:26-31 골로새서 3: 1-11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 인간이 특별하다는 ...
    Date2002.07.10 Views1148
    Read More
  18. 생명문화를 가꾸는 교회

    생명문화를 가꾸는 교회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1월 7일 주현절 첫째주일> 육성설교(20:21) 생명문화를 가꾸는 교회 창 세 기 2: 4- 7 요한일서 1: 1-10 새해 첫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Date2002.07.10 Views1174
    Read More
  19.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1년 1월 1일 새해맞이 예배> 육성설교(21:39)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잠 언 16: 1- 9 빌립보서 4: 4- 9 2001년 새해 첫 아침,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
    Date2002.07.10 Views2112
    Read More
  20. 성(城)과 말씀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0년 12월 31일 성탄후 첫째주일> 육성설교 성(城)과 말씀 느헤미야서 8: 1-12 마태복음 23:23-28 이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마지하면서 지나온 일년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아직도...
    Date2002.07.21 Views132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