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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4월 29일 부활절 셋째주일>
   육성설교(24:48)

영적인 몸으로의 변화
 

시       편      16: 5-11

고린도전      15:35-49

     

    사도 바울의 전도로 세워진 고린도 교회는 활발하게 모이는 교회이기는 하였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내 파벌이 있어 분쟁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 교리적인 문제들을 제기하여 분명한 해답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편지로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하여 해답과 방향을 써 보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길게 썼는데, 그것은 부활이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결국 예수를 믿는 일은 모두 헛된 것이 되어 버릴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바울은 정성을 기울여 이 문제에 대하여 답변을 써 보냈습니다.

    고린도 교인 가운데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고, 그러면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선교도 헛되고, 그것을 믿은 사람들의 믿음도 헛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는 바로 부활의 신앙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바울의 반박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초두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셨고, 자기에게도 나타나셨음을 기록하면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과 관련하여 제기된 두 번째 의문은 죽은 자의 부활이 가능하다면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의문은 우리 모두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의문에 대하여 자연 현상을 비유로 들면서 너무도 쉽게 답을 주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고전 15:36-38

    이 비유를 통해서 바울은 몇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죽음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단계라는 사실과 둘째로 씨앗은 죽지만 거기서 새로운 열매가 나온다는 연계성(連繫性)의 문제와 셋째로 새로운 형체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자연 속에서 우리가 수없이 보아온 현상이 그대로 인간에게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밝히므로 부활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한 것임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원래적인 창조질서로서의 부활이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막혔다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다시 원상회복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전에는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가 그의 부활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이런 부활의 세계에 대하여 분명한 신앙을 가지므로 우리의 신앙의 폭을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넓혀 가야 할 것입니다.

    죽음은 변화를 위한 단계

    첫째로 바울은 우리의 죽음을 변화를 위한 단계로 보았습니다.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죽음은 모든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몸을 입기 위한 변화의 단계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기피하는 것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음은 대단히 요긴한 장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에 죽음이 없었다면, 이 땅은 벌써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죽음은 낡은 것들을 청소하므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자리를 마련해 주는 청소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대단히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으면서 이 죽음은 공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모든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가능하면 피하려 하였습니다. 죽음을 모든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게 한 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인간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눈이 멀고 오직 이 땅의 삶에만 눈을 고정시키면서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높은 장벽이 되어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 땅의 주어진 삶에만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효과적으로 죽음의 장벽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을 서로 격리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죽음은 결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새로운 생명의 단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장벽이 되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장벽을 제거하시려고 그의 외아들을 보내셨고, 그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므로 마침내 죽음은 장벽이 아닌 새로운 변화의 도약을 위한 단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 보면 "살과 피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형태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현재의 삶을 끝내고 변화된 새로운 몸으로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우리의 삶은 씨앗으로서 땅에 심어 죽어야 새로운 형체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의 삶은 부패하는 삶, 천한 삶, 약한 삶, 육적인 욕망을 따라 사는 삶인데, 이런 몸, 이런 삶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죽음이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죽음은 바로 이런 썩을 몸, 천한 몸, 약한 몸, 육체적인 몸을 모두 청소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씨앗이 죽을 때 거기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꽃이 핀 후 새로운 열매가 맺듯이, 우리가 죽음을 통과함으로 썩지 않는 몸,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하나님의 연금술(鍊金術)이라고 하겠습니다. 돌덩이에 불과하였던 금광석이 불 속에 들어가 연단 되면서 불순물은 모두 빠져버리고 순금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바로 연금술사들의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덩이와 같은 우리를 죽음의 불길 속에 집어 넣으셔서 마침내는 강하고 영광스러운 썩지 않는 영적인 몸으로 나오게 만드신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아주 훌륭한 연금술사이십니다.

    따라서 죽음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그의 은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빌 1:21)고 하였습니다. 초대 교회가 받은 극심한 박해 때에 많은 신앙인들이 순교를 당하였는데,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그리스도인임을 굽히지 않은 것은 바로 죽음을 새로운 변화의 단계로 받아드린 부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죽는 것도 유익하다"라는 확신이 여러분 속에 자리 잡을 때 여러분은 진정한 부활 신앙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씨앗과 열매의 연계성

    둘째로 사도 바울은 씨앗과 열매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씨앗 없이 열매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비록 썩을 몸이고 타락한 삶이지만, 이 몸 역시 대단히 중요한 씨앗이 아닐 수 없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다음에 얻을 새로운 몸 즉 강하고 영광스러운 영적인 몸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삶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차피 약한 몸, 썩을 몸이라면 아무렇게나 살다가 가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약하고 천하며 보잘 것 없는 우리의 몸이지만, 이것이 이 다음에 얻을 영광스러운 영적 몸의 씨앗이라는 점을 기억할 때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반대로 씨앗이 될 오늘 우리의 삶을 보다 잘 가꾸고 더러운 것과 욕망을 제거하여 깨끗하고 진실한 삶으로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좋은 씨앗에서 좋은 열매가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압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이 좋은 씨앗이 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종자개량을 통하여 다수확의 벼를 거두듯 우리 자신의 삶을 개량할 때 아름다운 영적인 몸을 열매 맺게 할 것입니다. 요즈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전자를 조작하기까지 하여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깊게 자리잡은 유전인자 가운데서 욕망의 인자들을 뽑아내고 겸손과 온유, 사랑과 평화의 인자들을 대신 집어넣어서 좋은 씨앗으로 태어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개혁하고 새롭게 하고자는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 부을 때 하나님은 아름다운 영적인 몸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좋은 씨앗이 되고자 하는 운동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머물지 않고 내가 속한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갖게 됩니다. 초대 교회 시절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으로 변화되자 그 영향을 받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를 이룩하였고, 자기의 물건들을 내어놓아 함께 나누어 쓰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씨앗 운동은 사도들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널리 퍼져 나가서 마침내는 로마를 변화시켰으며, 그 운동은 세계로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좋은 씨앗으로 심겨질 때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씨앗의 세계와 열매의 세계가 별개가 아닌 하나의 생명의 세계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이루는 삶과 영원한 생명의 삶은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 현상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씨앗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의 몸에 이미 영원한 생명의 인자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따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세계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고 언제나 그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맞는 삶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죽음이란 단계를 거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두 세계로 분리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하나님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이루어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영적인 몸을 주시는 하나님

    끝으로 사도 바울은 씨앗에게 새로운 형체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몸은 썩지 않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이라고 하였고, 한 마디로 '영적인 몸'( soma pneumatikon)이라고 하였습니다. 원래 바울에게 있어서 '몸'(soma)은 상당히 넓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는데, 대체로 그것은 육체를 가지고 사는 이 땅의 삶을 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원래 대립적인 개념으로 사용된 '영'(pneuam)이란 말이 덧붙여졌습니다. 여기서 '프뉴마'는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대립되는 개념의 두 단어가 합하여졌습니다. 결국 '영적'이란 형용사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던 삶과는 다른 영적 존재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 '몸'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함으로 영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이 땅의 삶의 연속이면서 어떤 형체를 가진 존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일 장신대 차정식 교수는, 영적인 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영적인 몸'은 인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틀어 영육 간의 단절이 아닌 연속, 분리가 아닌 통합, 배타가 아닌 포용을 지향하는 창발적 개념으로 자리 매김 될 수 있다"

    고린도후서 5장 4절에 보면 "우리는 이 장막에서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킴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표현대로 한다면, 몸에 하나님의 영을 덧입은 상태를 '영적인 몸'이라고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덧입혀진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몸은 삼킨 바 되므로 이 땅에서 나타냈던 몸의 모든 특성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영적인 몸으로 변화되었을 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됨과 동시에 더 이상 사망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영적인 몸은 하나님의 온생명 속에 통합된 존재가 되어 구원받은 만유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온생명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원한 즐거움과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런 폭 넓은 부활 신앙을 받아 드림으로 여러분의 삶의 폭을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삶에만 매어 허덕이며 사는 자리에서 벗어나 영적인 몸으로의 부활을 바라보면서 오늘 나의 삶을 좋은 씨앗으로 가꾸기 위하여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속박하는 굴레가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영생의 세계로 인도하는 관문임을 분명하게 알므로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함을 얻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참여하여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부활을 통해 우리 앞에 열린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보지 못한 채 이 땅의 삶에만 매어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현대인들을 향하여 이 부활의 복음을 부지런히 힘있게 선포하여 저들을 일깨우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노력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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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0년 12월 31일 성탄후 첫째주일> 육성설교 성(城)과 말씀 느헤미야서 8: 1-12 마태복음 23:23-28 이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마지하면서 지나온 일년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아직도...
    Date2002.07.21 Views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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