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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1 09:46

모든 것을 가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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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0월 22일 감사절 여덟째주일>
   육성설교

모든 것을 가진 자

시      편    34: 9-10
고린도후서 6: 1-10

       

    오늘 읽어 드린 고린도후서의 말씀의 8절 이하를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과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없는 사람과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과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과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과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과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과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전도자의 역설적인 삶을 보여 줍니다.

    사물을 보는 두 시각

    사도 바울의 역설적인 표현들 속에 나타난 진리는 모든 사물을 보는 데는 두 가지 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이 역설적인 표현들의 앞부분은 세상적인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 것을 말해 줍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전도자는 속이는 자 같고 무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며, 징계를 받는 자 같고, 근심하는 자, 가난한 자,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이 보입니다. 아마도 실제로 전도자의 삶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너무나 사물을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는 단순한 시각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대체로 이런 시각으로만 모든 사물을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도 거듭나기 전에는 이런 시각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았고, 그들을 잡아죽이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거듭난 후에 바울은 보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알면서 갖게 된 새로운 시각입니다. 모든 사물을 나타난 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의 보다 큰 세계를 보게 되므로 그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어난 사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속에 담긴 섭리를 알게 되므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전도자를 볼 때 참되고, 유명한 자요, 살아있는 자요, 항상 기뻐하는 자요,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이며,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모든 사물을 나타난 그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시각으로 항상 보고 생각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삶만을 볼 때 우리는 극히 제한적이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오늘의 세계와 같이 신자유주의가 팽창하면서 가진 자들 위주로 세계가 돌아갈 때 대부분의 갖지 못한 자들은 무명한 자요, 죽는 자 이며, 징계를 받는 자이고, 근심하는 자, 가난한 자, 아무 것도 없는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평등한 질서를 깨고 새로운 평화의 세계가 오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한 채 체념하며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이런 불평등 질서 속에서 포기하고 낙심하는 대신에 희망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오늘의 불의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고 거듭나면, 이 땅의 짧은 삶에 머물지 않고 영원한 삶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됩니다. 이 땅의 삶에서 비록 고난 당하며 가난하게 살아도 그 때문에 울고 웃는 대신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더욱 확고하게 지니면서 그 고난을 극복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얻기 위하여

    사도 바울의 여러 역설적인 삶의 모습 가운데서 오늘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 후에 실제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를 떠받쳐 주던 세상의 모든 지위와 명예와 재물을 다 버렸습니다. 그에게 자랑할만한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사도들의 세계에서조차 그는 가장 작은 사도로 대접받는 것에 만족하였습니다. 스스로를 죄인의 괴수로 자부하였고,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였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버린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해서 사실상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곧 만유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선물임을 깨닫고 그것을 얻기 위해 주저함 없이 과거에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문제도 바로 가치관의 문제이며, 결단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붙잡느냐 아니면 그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잡느냐 하는 가치 판단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살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결국 거기에 필요한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선택하고 따라가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값지고 귀한 것임을 믿는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온 부자 청년은 두 가지 다 얻기를 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면서 권력과 명예도 얻고, 그러면서 동시에 영생을 얻을 수 없을까 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결단을 요청하셨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하였는데, 그 부자 청년은 결국 영생을 포기하고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청년은 영생의 가치를 그가 가진 재물보다 못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영생을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면서 그의 복음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바로 깨닫고 단호하게 돌아서서 그리스도를 따랐으며, 그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사도 바울은 정말 모든 것을 가진 자로 행동을 하였습니다. 가령 빌립보서에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4:13)라고 한 말이나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 가운데서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4:19)라고 한 말들은 바로 그가 모든 것을 가진 자임을 유감 없이 나타내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없는 자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자였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자신을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우리 모두가 설악산 주인의 자녀들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큰돈을 들여 산을 사들이고 땅을 사들입니다만 사실상 자기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빌려 쓰는 것인데 그것을 아무리 많이 소유하려한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차라리 소유를 포기하였을 때 우리는 모두를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지리산도 내 것이요, 한라산도 내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갖지 않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을 때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진정으로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하는 존재임을 우리가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 세계를 바라보면 이 땅의 삶에만 집착하지 않고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런 생각을 갖게 되면 담을 칠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서로를 경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도의 삶으로 서로 나누며 살면 굳이 선을 그어서 네 것 내 것을 구별할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간의 전쟁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가 이 세계 속에 깃들이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이 세상의 좁은 테두리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보여주고 그 구원의 은총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값진 것임을 전파하고 깨우치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는 이 땅의 가난을 해결할 수도 없고, 사람들이 안고 고민하는 이 땅의 모든 병과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해결하라고 세워진 교회도 아닙니다. 물론 교회가 때로 자선도 베풀고 구제도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그 생각을 바꾸고 그 삶을 거듭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즉 그 가치관이 바뀌면 문제로 느껴지던 가난이 오히려 천국에 이르는 첩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좌절과 아픔을 가져오던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 안에서 변화되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된다거나 병이 낫거나, 하는 사업이 모두 형통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면, 교회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부(富)를 가져다 줄 비방(秘方)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병은 병원에서 잘 고치고, 건강은 스스로가 지켜가야 할 문제이지, 교회가 병원 역할을 하거나 건강증진센타 역할을 하는 곳은 아닙니다. 교회는 영과 육을 아울러 잘 되게 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육에 대한 관심도 갖고 기도하지만 우리의 주된 목적은 영이 구원함을 받고 그 영이 바라보고 나갈 세계를 가르치고 전하는데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간직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사람들로 눈을 뜨게 만들므로 이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자로 살지만 언제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진정한 영적 부요를 누리게 하고자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이런 교회의 사명을 올바로 이해하고 교회에 나올 때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나라를 향하여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평화로운 삶

    우리가 이런 신앙과 가치관을 갖고 최소한의 삶을 살면, 누구도 내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빼앗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와도 화평할 수 있습니다. 있으면 함께 나누어 쓰고, 필요 이상 소유하려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참으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소유하려만 하고 나누려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시기하고 빼앗으려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진 자는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것을 빼앗으려는 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항상 경계심을 갖고 사람을 대하여야만 하는 피곤함이 있게 마련입니다. 부자가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대로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까닭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 성장은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가속화시킴으로 더욱 깊어진 갈등의 골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잘 살기만을 목적으로 할 때 싸움은 불가피하고 환경은 더욱 오염되고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하였다고 하였으나 오히려 국민들에게 절약하고 아끼는 삶을 교육하기보다는 계속 아끼지 않고 소비하는 심리를 부추겨 또 다시 위기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경제 성장의 지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정신적 지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상을 통치 이념으로 내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런 이상을 향하여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지녀야 할텐데 오늘 우리에게 이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눅 12:15)고 하셨습니다. 소유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요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소유의 넉넉함이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소유는 반대로 그 생명을 시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때가 더 많습니다. 더욱 안 좋은 것은, 소유는 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소유가 그의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히려 소유를 버릴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있으며, 거기서 참 생명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과 그리고 생의 기쁨과 보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재물을 가지고도 생명을 갖지 못한 자와 아무 소유는 없으나 생명의 기쁨과 능력을 가진 자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행복한 자이겠습니까? 소유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으나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일시적인 재물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갖는 것이 얼마나 더 큰 은혜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가치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오늘도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에 미워하고 경계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이상을 정치에 담는다면 바람직한 통치가 실현될 수 있지만, 그것은 정치의 몫이 아니라 교회의 몫이라고 생각할 때 교회의 사명이 더욱 막중함을 느낍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제 탐심을 버릴수록 더욱 풍성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우리의 생활이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만물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죄 사함을 통하여 얻은 참 생명을 가진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생명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소유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생명의 기쁨과 자유야말로 그 어떤 소유보다도 값진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받아 드린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히 하면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절제하고 절약하며 나누는 삶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어차피 이 땅의 소유는 내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소유를 위해 힘쓸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 힘쓰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풍성함을 누리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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