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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1월 26일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
   육성설교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스바냐서   2: 1- 3
고린도전   1:26-31

     

    상층 지향적인 사회

    최근에 치른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시험에서 비교적 쉽게 문제가 출제되어 고득점자가 많이 나왔는데, 수능이 끝난 뒤 쏟아져 나온 언론보도는 고득점자 양산으로 인해 수능이 변별력(辨別力)을 상실했다는 게 주된 흐름이었습니다. 380점 이상이 몇 명에 이른다느니, 서울대 인기과 특차에는 최소한 398점이 돼야 한다느니 하는 보도가 그 예입니다. 전체 수능 응시자 87만명 가운데 극소수인 380점 이상의 고득점자들 문제가 마치 올 수능의 전체 문제인 것처럼 그렇게 다뤄졌습니다. 300점 이하를 얻은 60여만 명은 관심의 대상도 아니라는 투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가진 자의 사회, 승자의 사회, 강한 자의 사회라는 사실을 뜻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모든 나라들이 대체로 비슷합니다. 약자들은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반발하여 공산혁명이 이루어지고 소외되었던 약자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졌지만, 그것은 또 다른 특권층을 만들어 내면서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큰 모순을 안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회주의 국가들이 실패하면서 자본주의 세력들이 더욱 큰 힘으로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세계는 가진 자들 20%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고, 그들을 위하여 80%의 사람들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 상위 20%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쏟아 붓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고액과외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면 일단은 신분상승의 일단계를 확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석범의 장편소설 [윈터 스쿨}에 서울대를 지망하는 4수생과 학원 강사 사이의 대화가 나옵니다.

      "두 분 다 오직 서울대라야만 된다는 거예요. 죽어도 서울대를 가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대학 열 개 나와봐라. 서울대 한 번 나온 것만큼 하는 줄 아느냐?"
      "응. 올림픽 금메달과 같다는 말씀이시군. 메달 집계할 때 은메달을 백개 따보았자 늘 금메달 하나한테 뒤지는 것처럼."
      "바로 그거예요! 그 집계 방식이 문젭니다. 그렇게 집계하는 것만이 옳은 것이라는 그 유치하고 우물안 개구리 같은 사고방식이 문제라구요! 그 사고방식 하나만이 세상을 온통 지배하고 있다는 게 문제란 말입니다! 한마디로 집단적인 최면이요. 집단적 광기죠! 서울대를 유일신으로 모시는 광신적 사교집단이 바로 이 불쌍한 대한민국이라구요!"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을 쓴 이석범씨는 학원 강사를 7년이나 한 사람이기에 그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서울대는 광신적 사교집단으로 비유된 대한민국의 상위권 20%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하는 것은 바로 이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신분을 보장받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를 극단적으로 양분시켜 놓는 주범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준만 교수 같은 분은 [서울대 망국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상층부에 속하려는 의식은 과거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조선조 시대에 반상의 차별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양반들은 온갖 혜택과 특권을 누린 반면, 상대적으로 상민들은 온갖 불이익과 고통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혈통적으로 신분상승 자체가 막혀 있어서 자신들의 고통 받는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장을 통해 기득권을 얻은 교회

    우리 안동교회는 바로 그 당시 사회의 가장 상층부에 속하는 양반들이 창립하였고 그 맥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과연 교회가 이 사회의 상층부에 속하여 특권을 누리는 것이 타당한가를 물을 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 초기 교회는 고난 받는 민중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장바닥 사람들이 중심된 연동교회나 첩이나 백정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승동교회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러던 교회들이 60년대 이후 경제 성장과 더불어 성장하면서 우리 사회의 무시하지 못할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자, 교회는 더 이상 이 시대의 고난받는 민중들의 편에 서지 못하고 오히려 특권층에 속한 교회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장관 국회의원 공무원 학계 기업계 등 어디에나 기독교인들이 무시 못할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교회는 이 사회의 기득권을 누리는 상층부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교회의 목사는 너무 가난하여 그 살림이 어렵고 힘들어 다른 사람들이 청빈(淸貧)의 상징으로 혹은 고난의 표본(標本)으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조차 자기 자식을 목사가 되지 못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목사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의 하나로 꼽히고 있어서 신학교의 문은 미어 터질 지경입니다. 지금 목사는 더 이상 가난의 대명사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 사회의 특권층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면, 기독교는 이 사회의 주류적인 종교로 자리잡게 된 것이며, 그 선교가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받은 사람에게만 온갖 칭찬과 특혜가 주어지는 사회, 소위 일류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이 활개를 치며 사회 각 분야를 점령하여 특권을 누리는 사회, 이 사회의 돈과 권력과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상위권 20%만을 위하여 모든 정책이 수립되는 나라,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정점을 향하여 올라가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투쟁을 벌리는 사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대립된 인간의 왕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교회가 그 상위권에 진입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저버리는 일이며, 그래서 개혁되지 않으면 안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스바냐서에 보면 "주의 명령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사람들아, 너희는 주를 찾아라. 올바로 살도록 힘쓰고, 겸손하게 살도록 애써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타난 "겸손한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아나윔'으로 가난한 자들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이란 왕족이나 귀족 혹은 상류계급의 사람들이 다 포로가 되어갈 때 남은 사람들로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스바냐는 그런 사람들에게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공의는 표준새번역에 보면 올바로 사는 것을 뜻하고, 겸손을 구한다는 것은 가난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공의와 겸손은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어떤 덕목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뜻합니다.

    올바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의 삶과 교훈을 통해서 공의와 겸손이 무엇을 뜻하는 지 명확하게 나타났습니다. 공의는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던 세계의 회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올바로 사는 길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켜 사는 것입니다. 창조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체계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그 체계가 막히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협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바로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삶 즉 공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공의의 회복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서 원할한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런 생명의 순환 체계를 깨트리는 것은 불의(不義)입니다. 더불어 살아가지 않고 자기만 어떤 특권을 누리면서 살아가려는 것은 불의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특권이나 혜택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 체계에 있어서 암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암(癌)이란 어느 특정 부위(部位)가 계속 불어나서 혹이 되므로 그 혹이 순환체계를 망가트려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소수가 부나 권력이나 지식을 독점하게 될 때 그것은 바로 암과 같이 어떤 특정 부위만이 커지는 현상으로,  그것은 바로 이 사회를 질식시키고 원만한 생명의 순환을 차단시키는 것이기에 불의입니다. 결국 이런 암적 존재는 우리 사회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주적 생명체계를 파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결코 그대로 두시지 않는 죄악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의 상위 지향적인 삶은 바로 불의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도 바로 상위 지향적인 목표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께서 저들의 그런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 막 10:43-45

    예수님은 제자들과 우리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바냐가 말하는 공의 즉 올바로 사는 길입니다. 여기서 섬긴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고, 자연을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섬긴다'는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섬김을 받는 것과 달리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모든 존재를 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섬김을 받아 마땅하신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섬기러 이 땅에 오셨다면 말할 것도 없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도 섬김을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상위 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오히려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삶, 그래서 거기서 끝까지 섬기는 삶을 살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고 그 나라에서 상급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다음으로 스바냐는 겸손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가난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가난을 추구한다는 말은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가난이란 돈이 없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도 명예도 모두 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상위권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모두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하늘에서 가지셨던 모든 영광과 부와 존귀를 버리고 완전하게 가난한 자로 이 땅에 오셔서 철저하게 섬기는 삶을 사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철저한 비하(卑下), 가난, 겸손함을 통해서 비로소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모든 욕망을 비우고 가난한 자로, 겸손한 자로 주님을 따르며, 그가 하신 것처럼 이웃을 섬기고, 자연을 섬기며 하나님을 섬길 때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오늘의 교회를 볼 때 이런 그리스도의 섬김과 겸손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역행(逆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교회의 위기가 있습니다. 교회가 개혁되어 다시 가난한 자리로, 낮은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될 위기에 몰려 있는데, 문제는 이런 사실을 오늘의 교회들이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깨닫지 못하고 오늘 누리고 있는 특권에 만족하면서 그 본분을 잊어버릴 때 하나님께서 이 교회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고난의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정금과 같이 새롭게 단련되어 나오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기득권자가 누리는 달콤한 작은 안락함에 빠져 넋을 잃고 있을 것이 아니라 깨어 정신을 차리고 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가진 자 편에 서서 그들을 거드는 집단이 아니라 80%의 고난 당하는 자 편에 서서 그들을 도우며 그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배가 불러서 저들의 요구와 부르짖음이 마땅치 않게 들리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진보적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자들, 가지지 못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원히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저들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공의와 겸손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택하여 이 땅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이 사회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깔린 사람들을 통하여 위에 있는 사람들을 엎어 버리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곤고한 백성들을 남기셔서 저들을 통하여 교만한 자, 스스로 공의를 버리고 악의 길을 택한 오만한 자들을 엎어 버리시고 모든 생명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와 그 뜻을 올바로 받들어 정신을 차리고 가난을 추구하며, 겸손한 삶으로 내려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기를 쓰는 대신에 이 땅에 대한 모든 욕망을 버리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려는 욕망에 사로 잡혀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거듭나서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사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하나님 안에 있는 우주적 생명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깃든 생명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혜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위로 올라가려 할 때 아래로 내려가 섬기는 자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사명임을 깨닫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말씀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참된 구원의 길이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첩경이 있습니다. 이제 공의와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전체 생명공동체를 함께 살려나가기 위해 사랑하며 섬기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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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2.07.21 Views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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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0년 8월 6일 성령강림절 후 여덟째주일> 육성설교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이사야서 43: 8-13 에베소서 4: 1-16 오늘 읽어 드린 에베소서 말씀에 보면,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하나됨이 강...
    Date2002.07.22 Views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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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변화산의 교훈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0년 7월 30일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주일> 육성설교 변화산의 교훈 열왕기하 2: 9-14 마태복음 17: 1- 8 오늘 읽어 드린 마태복음의 말씀은 변화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
    Date2002.07.22 Views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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