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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1 09:32

옥합을 깨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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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2월 10일 대림절 둘째주일>
   육성설교

옥합을 깨뜨려

잠      언    3: 1- 10
마가복음   14: 3- 9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헌을 한 여인의 이야기가 오늘 읽어드린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제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값진 향유였습니다. 오늘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천 5백만원 정도 됩니다. 이렇게 값진 향유를 한순간에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아까워한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을 나무라는 대신에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시면서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왜 이런 행동을 하였을까요?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매우 값진 향유를 조금도 아낌없이 주님께 쏟아 붓도록 만들었을까요?

    요한복음에 보면, 이 여인은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자매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 때면 이 집에 들리셔서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살려주신 일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셔서 말씀하실 때는 언제나 그 말씀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이 일로도 마리아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하여 넘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모든 삶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녀의 모든 삶의 가치관이 변화되었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은혜로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넘치는 은혜를 받은 그녀는 자기가 고이 간직해 온 값진 향유를 예수님께 모두 바친 것입니다. 그보다 더 값진 것이 있었다면 그것을 드렸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닦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가장 고귀한 것으로 주님께 봉사하고자 한 그의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받은 바 은혜에 감격하면서 정성을 다하여서 주님께 봉헌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리아를 통하여 봉헌의 몇 가지 기본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봉헌은 은혜의 산물이다

    첫째로, 모든 봉헌은 은혜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대단히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주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하고 남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합니다. 좀처럼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악착같이 자기만을 위하여 끌어 모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만을 위하여 살던 사람도 사랑을 느낄 때는 아낌없이 주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주려고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그들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주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색하던 우리가 하나님께 봉헌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게 하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0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죽음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셔서 하늘의 썩지 아니할 기업을 이을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우리를 강건케 하십니다. 우리를 은총의 날개 아래 보호하시고, 때를 따라 하늘의 은혜로 우리를 풍족케 하십니다. 이 넘치는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이 사랑을 통하여 우리가 사랑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봉헌은 바로 이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봉헌은 우리에게 있는 가장 값진 것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신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늘 아쉬운 마음뿐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뿐일세" (찬송 82장).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 소득의 첫 번째 것으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무엇인가 주님 앞에 드리고 싶어 여유가 없는 가운데서도 정성껏 봉헌을 하는 것입니다. 두 렢돈을 드린 과부의 심정이 바로 그러했던 것입니다. 비록 가난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늘 자기에게 충만함을 체험하기에 렢돈이라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봉헌의 생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 교회는 나오지만 뜨거운 은혜의 체험이 없기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사랑이 없기에 드리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향유를 붓는 마리아를 지켜 본 제자들의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과 늘 같이 다니고 생활하였으면서도 마리아가 체험하였던 감격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헛된 욕망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체험한 뜨거운 감격을 저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넘쳐흐르는 사랑이 저들의 메마른 가슴에는 와 닿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눅7:47b)고 말씀하셨습니다.

    봉헌은 은혜의 산물입니다. 모든 죄를 사함 받은 성도의 뜨거운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봉헌이 무거운 짐일 뿐입니다. 주님께 바치는 것이 즐겁고 기쁜 마음을 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여러분의 마음이 아직 열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봉헌은 우리의 신앙의 척도가 됩니다. 봉헌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에 봉헌의 기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여러분의 봉헌이 늘 기쁨에 넘친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옥합을 깨뜨려라

    둘째로 생각할 것은, 참된 봉헌은 옥합을 깨뜨림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옥합이란 자신의 삶을 뜻합니다. 자신을 위한 욕심의 옥합, 이기심의 옥합, 자존심의 옥합, 교만의 옥합을 깨뜨림 없이 주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옥합들 속에 아무리 값진 향유가 담긴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욕심만을 만족시킬 뿐이지 향내를 발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고 예수님에게 부었을 때 향내가 방안에 가득 풍겼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려면 우리 자신을 깨뜨려야만 합니다. 자신의 욕심과 교만과 자존심이 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거듭나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르밧 땅에 사는 과부가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을 털어 예언자 엘리야를 대접했을 때 그녀는 자신과 아들의 죽음을 각오했어야만 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남겨 두었던 마지막 것을 남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찾아 나온 부자는 영생을 갈망하면서도 모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였을 때 그는 슬퍼하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깨고 나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깨뜨리지 아니하고는 새 생명의 향기가 발휘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의 문제는 바로 옥합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데 있습니다. 더 많은 옥합을 만들어 거기에 자신을 위한 향유를 채우느라 혈안이 되어서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며 헌금을 하여도 자기 옥합의 담긴 향유의 지극히 적은 부부만을 바칠 뿐입니다. 사람들은 인색한 마음으로 적은 봉헌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옥합에 향유를 더욱 가득 채워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이런 헌금은 더 많은 자기의 향유를 위한 일종의 투자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봉헌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특히 여기시고 사랑을 더하여 주실 수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바라고 봉헌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미 받은 바 은혜가 갚을 수 없을 만큼 큰데,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자신의 삶의 옥합을 깨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 옥합에 자신의 삶을 위한 향유를 더 많이 채워주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은 이미 과거의 자신의 모든 욕망과 허영심과 자존심을 모두 깨뜨렸음을 뜻합니다. 그가 옥합을 깨므로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향유를 모으지 않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하기로 다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단순히 향유만을 예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드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봉헌의 삶은 단순히 수입의 일부분을 떼어 바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모든 삶을 주님께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봉헌은 내 욕망의 성취를 위하여 살던 삶의 옥합이 깨어진 결과로 나타나기에 그것은 우리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겸손히 봉헌의 예물을 드릴 때 그것이 향기로운 것은 나의 자존심의 옥합을 깨뜨린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감사함으로 봉헌할 때 그것이 값이 있는 것은 이기심의 옥합이 깨어진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소년의 봉헌이 아름다운 것은 이 때문이며, 과부의 두 렢돈이 칭찬을 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깨고 나오지 아니하고는 하나님 앞에 올바로 봉헌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옥합을 깨뜨려야 하겠습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향내나는 산제사를 주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봉헌은 아낌없이 전체를 드리는 것이다.

    셋째로 생각할 것은 봉헌은 아낌없이 모두를 드리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모두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봉헌은 결국 나의 모든 삶이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은 다시는 향유를 모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였던 향유를 이제는 소유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주님만 위하여 살겠다는 뜻입니다. 아낌없이 모두를 바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하여는 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헌신(獻身)한다는 뜻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로마서의 말씀대로 나의 삶 전체를 산 제물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봉헌은 헌신의 약속입니다. 주님만을 사랑하기에 이제는 주님만을 위하여 살겠다는 사랑의 약속입니다. 마리아의 향유 봉헌은 그의 일생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바치며 봉사하겠다는 서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 봉헌은 대단히 중요한 순서입니다. 봉헌이 올바로 되지 못하였을 때 우리의 예배는 올바로 드려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베푸신 사랑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행위인데, 봉헌 없이 우리의 마음을 바쳐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봉헌이야말로 예배의 핵심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그 말씀에 응답하여 나 자신을 드리는 봉헌이야말로 예배의 절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의 표현이 물질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표현될 때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물질 없이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몸으로 봉사하고 마음으로 그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마리아가 향유 없이 그냥 예수님 앞에 나갔다면 어떠했을까요? 3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쏟아 부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향유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일조를 요구하시는 뜻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십일조 즉 우리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봉헌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그런 의미에서 십분의 일이 아닌 전체를 의미합니다. '나의 모두를 주님께 드립니다'라는 내 마음의 표시로 내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내 마음의 표현입니다. 내 생애 전체를 주님께 드리겠다는 서약의 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배하러 나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마십시오. 빈손으로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빈손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아직 나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아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봉헌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 금년 결산은 대체로 달성이 되었습니다. 여러 교우들께서 기쁨으로 봉헌하신 결과라고 생각할 때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여건이 호전되지 못한 상황임에도 여러분의 뜨거운 봉헌과 헌신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일년 동안 예배와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봉헌과 헌신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이런 봉헌과 헌신은 바로 여러분의 옥합이 깨어진 결과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한 결과라고 생각할 때 더욱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년에도 마리아의 뜨거운 은혜의 체험이 여러분 속에 이루어져 아름답고 향기로운 봉헌의 생활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옹졸하였던 제자들이 오순절 이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모든 삶을 오직 주님만 위하여 바쳤던 것처럼, 여러분도 성령 충만함을 체험하시므로 기쁨으로 여러분의 삶 전체를 주님께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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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d { font-family : 굴림; font-size : 9pt; line-height:150%} <2000년 7월 30일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주일> 육성설교 변화산의 교훈 열왕기하 2: 9-14 마태복음 17: 1- 8 오늘 읽어 드린 마태복음의 말씀은 변화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
    Date2002.07.22 Views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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