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낯선 존재, 낯선 현실
본문: 사도행전 15:5-11
첫 교회는 선교적 교회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교회의 선택이 아니었다. 교회가 사마리아 선교와 이방인 선교를 기도하면서 깨닫거나 말씀을 읽다가 깨달으며 선교정책을 결정해서 나아갔던 것이 아니라,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박해 상황으로 인해 더 이상 예루살렘에 있을 수 없게 된 상황에 의해 떠밀려서 이 같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주후 1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예루살렘 공의회의 쟁점은 할례로 대표되는 모세 율법이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말씀이 쟁점인데 교회는 놀랍게도 회의와 논쟁을 선택했다. 이 모든 회의가 성경과 신학에 대한 검토로 인해 결정되고 추진한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교회가 떠밀리듯이 놓이게 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변화된 상황의 핵심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존재이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은 첫 교회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존재, 낯선 존재였다. 이 낯선 존재를 접하게 되면서 그들의 고민이 시작되고 사도행전 15장과 같은 첫 공의회까지 열리게 된 것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이해를 그대로 고집한 채로 새로 들어온 낯선 존재와 함께 살아갈 수는 없다. 첫 교회는 자신들의 기존 이해를 버렸고, 기존 판단을 버렸다. 그럴 때 첫 교회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형제자매가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다. 첫 교회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교회 스스로의 판단이 아니라 낯선 이웃, 새로운 그리스도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끼리 이전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개혁과 혁신을 말한다고 해서 ‘새로운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선교적 교회를 말한다지만 여전히 기존 교회 체계와 별다르지 않은 리더십이 이끄는 ‘선교적 교회’는 형용모순이다. ‘선교적 교회’의 가장 최우선 사항은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 낯선 이웃 사이에 존재하는 교회이다. 우리는 얼마나 새로운가? 우리가 알던 세상, 우리가 알아왔던 세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낯선 존재, 낯선 현실에 직면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