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제글모음
2009.04.13 12:06

[김창제 글모음 44] 愛의 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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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年> 1926년 11월
 


爭鬪를 是事하는 現代人에게 愛를 說함은 馬耳東風만도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反感을 살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고싶은 말을 못할 것은 없다. 이것도 各各 自由이니까. 元來 眞理는 平凡한 中에 있는 것이다. 吾人이 만일 空氣가 없으면 一分間이라도 生活을 自由할 수가 없지마는 空氣는 워낙 多量이고 따라서 所有者가 없는 때문에 그것이 그다지 重要한 줄을 不覺하는 것이다. 우리가 世上이 어쩌니 󰀆󰀇 하여도 母胎로부터 日常生活로 墳墓에 入하기까지 사랑이 아니면 存在할 수가 없지마는 우리는 도리어 그것을 不覺한다. 昔에 一王이 有하여 一賢臣에게 「此世에 가장 큰 幸福을 주는 것이 무엇이냐」고 問한 즉, 그 賢者는 愛라고 答하였다. 「그러면 가장 큰 禍를 주는 것은 무엇이냐」고 問한 즉, 亦是 愛라고 答하였다. 그러면 愛는 果然 이러한 反對의 兩面을 가진 것인가? 愛의 性質은 果然 이러한 矛盾이 있는가? 아니다. 같은 愛라는 이름 아래도 神의 愛와 人의 愛라는 大區別이 있는 것이다. 愛他, 博愛의 愛는 즉 神의 愛이오, 人의 愛란 것은 卽 利己心으로 出來한 一種의 感情에 不外한 것이다.

보라, 古來로 仁人君子가 人道正義를 爲하여 一身 一家를 不願하고, 그 社會, 그 國家, 또는 人類에게 最大한 幸福을 與한 것을. 또 이와 反對로 世俗에서 日日로 생기는 慘死悲劇이 거의 다 利己主義에서 出來하는 人의 愛 때문이 아닌가? 更言하면 人의 愛의 反面에는 猜忌, 嫉妬, 憎惡, 詭譎, 徒黨 等이 아닌가? 自己에게 利益이 있을 때에는 사랑하는 체 하다가 利益이 없을 듯하면 곧 反目嫉視하여 仇儺로 化하는 것은 吾人이 日常 經驗하는 바이다. 人類의 不幸이란 不幸은 다 이로조차 出來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愛의 性質을 좀 分釋하여 보자. 이는 즉 理․同情이다. 彼此에 理가 없으면 眞愛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伯牙와 種子期의 사랑은 彼此의 理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種子期가 죽으니까 伯牙는 琴을 斷하였다. 이로 보면 彼此에 敵對의 地位에 있으면서도 眞正한 理가 있기 때문에 相信不疑하고 生命을 依託할 수도 있다. 또 其次로 同情이라는 것은 愛의 動作의 原動力이 되는 것이다. 如何히 宏壯한 慈善事業이나 公益이 어떠한 同情에서 起來한 것을 屢々히 ○見한다.

다시 愛의 動作하는 形式으로 보면 犧牲과 協同이다. 一方이 他方을 爲하여 自軆를 犧牲하는 것은 自然界의 法則 中에서도 發見할 수 있다. 麥 一粒이 地에 落하여 썩지 아니하면 多數한 穀粒을 結할 수 없다는 것은 基督의 이미 說破하신 바여니와 昆虫類도 그러하다. 그러나 此中에 更大한 眞理는 卽 義人이 犧牲함으로 一 民族이나 全 人類가 救拯되는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果然 一千萬 黑人의 救主가 아니며, 예수 基督은 참으로 人類의 救主가 아니냐?

其次 協同은 大事를 成就하는 最大 要素가 되는 것이다. 이 조그마한 懷中時計 一箇를 製造하는데도 實로 四百餘人의 專門工匠이 協力하여 된 것이다. 埃及의 金子塔을 볼 때, 支那의 萬里長城을 볼 때, 誰가 그 協同의 力이 偉大함을 驚歎치 아니할 者리오. 生物界에도 다만 生存競爭으로 進化하는 것이 아니다. 其實은 協同으로써 不絶히 向上하고 進化하여가는 것이다. 만일 協同의 眞理가 아니면 저 美麗한 花叢이나 奇妙한 蜂歌蝶舞도 없을 것이다. 宇宙는 果然 荒凉한 沙漠으로 化할 것이다. 古話에 盲人과 躄과 聾이 同處에서 火災를 만났었다. 「불이야!」하는 소리를 最初로 躄者가 들었으나 起立할 수가 없다. 其次 盲人이 들었지만 方向을 알 수 없다. 그런데 聾者는 無心하고 앉았다. 까딱하면 三人이 燒死할 판에 눈치 빠르고 재치있는 一人이 달려와서 盲者에게 躄을 업히고 聾者에게 手를 끌게 하여 盲者의 肩에서 躄者가 逃去할 方向을 指示한 즉, 聾者는 手를 引하고 走하여 其難을 三人이 俱免하였다 한다. 이 古話에서 우리는 一大 敎訓을 얻을 수 있지 아니한가? 何事든지 各々 分離하여서는 큰 힘이 될 수 없는 것이다. 假令 各者의 處地가 相異할지라도 큰 目的 큰 事業을 爲하여는 彼此에 協同一致하여 最後의 勝利를 圖할 것이다.

聖書에는 「神은 愛라」고 道破하였다. 옳다. 宇宙 森羅萬象이 온통 神의 愛를 語하는 것이다. 그 千差萬別한 中에도 各者의 調和가 있고 協同이 있고 리듬이 있고 멜로디가 있다. 尤况 其中에 靈長이라는 人일까 보냐? 드라먼드 博士의 「人類의 上進」에도 말한 바 있지마는 人의 進化가 만일 生存競爭에만 있다하면 人間은 結局 修羅場이오 阿鼻地獄이다. 그러나 人類는 愛의 法則에 依하여 進化向上하는 것은 歷然한 事實이다. 우선 親子의 愛로부터 人類의 進化는 始作한 것이다. 爲我 生存競爭으로가 아니라 爲他 生存競爭으로 因하여 上進한 것이다. 故로 萬事에 暴力으로만 競爭을 試하는 者는 畢竟 失敗할 것이오, 最後의 勝利를 取할 者는 곧 愛의 力이라 할 것이다. 天時가 地理만 못하고 地理가 人和만 못하다는 것은 孟子도 云한 바가 아니냐. 西洋의 古話가 있다. 風과 太陽 間에 다툼이 있었는데, 마침 一 紳士가 屋外에 步行하는 것을 보고 우리 中에 누가 저 紳士의 外套를 얼른 벗기나 보자고 競爭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風은 먼저 非常한 勢力으로 그 紳士의 外套를 吹去하려고 힘을 쓴즉, 쓸수록 그 紳士는 漸々 外套를 꼭 붙들어서 身軆에 휩싸는 故로 도무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太陽은 風처럼 暴力으로 하지 아니하고 徐々히 그 溫熱한 光輝를 放하여 紳士의 몸을 덥게 하니까 紳士는 漸々 그 溫味를 感하여 外套 뿐 아니라 그 上衣까지 脫하였다. 이에 風은 此를 見하고 太陽의 前에 垂頭謝禮하였다 함이다. 此는 一 喩에 不過하나 亦是 此中에서 큰 敎訓을 얻을 수 있다. 고리도前書 十三章에 있는 바와 같이 如何한 能力이 있을지라도 愛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愛는 實로 萬能이 있다. 모든 道德의 根本이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屬性이 愛에 包含되어있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島에서 最終의 歎息한 말에 「我는 劒으로써 天下를 征服하려다가 今日 이러한 失敗를 當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果然 사랑으로써 天下를 征服하였다」고. 아! 크다, 愛의 力이여! 仁者는 天下無敵이라 함이 어찌 我를 欺하였으리오.

余는 愛에 대한 經驗과 所感을 좀 더 써서 此文을 結코자 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福이라」고 主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이는 果然 余의 體驗한 바이다. 我가 彼에 對하여 참사랑으로 무엇을 줄 수 있을 때처럼 幸福스러울 때가 없다. 精神的으로나 物質的으로나 勞力으로든지 무엇으로든지 아까운 것이 없다. 만일 나에게 있는 것을 주는 때에 아까운 마음이 일어난다 하면 이는 벌써 愛가 不足한 証據이다. 그리고 余가 人에게 무엇을 주고 스스로 優越感을 가지는 것처럼 卑劣한 心情이 없는 줄 안다. 그런 故로 「人을 救濟할 時에 右手가 하는 事를 左手도 不知하게 하라」 하신 것이다.

愛는 生命의 糧이다. 特히 精神的으로 그러하다. 吾人이 어떠한 患難窮乏을 當할 時에 사랑하는 친구로부터 간절한 慰勞獎勵를 받을 時에 얼마나 安心과 勇氣를 얻는가? 이와 反對로 사랑하던 者의 背反을 當하거나 或은 憎惡하는 者가 있을 時에 我의 精神이 果然 얼마나 錯亂하고 懦弱한가? 그러므로 祭物을 祭壇에 놓아두고 빨리 가서 兄弟와 和親하라 하신 것이다. 사랑이 얼마나 人格을 偉大케하며 事業을 神聖케 하는가? 日前에 홀부인 回甲記念式 席上에도 가장 嚴肅하고 沈痛한 感想을 얻었을 것이다. 余는 不幸히 當日 參席의 光榮을 得치 못하였으나 衷心으로 夫人의 愛他心을 敬慕하는 바이다. 愛의 力은 能히 自己의 肉을 割去할 수까지 있는 것이다. 이 犧牲的 愛의 앞에서야 誰가 敢히 垂頭感謝치 아니하랴? 國際問題도 人種問題도 及至 社會問題도 이 앞에서는 다 머리를 숙이고 말 것이다.

아! 爭鬪로써 勝利를 얻고자 하는 이여! 爭鬪는 畢竟 滅亡을 招來하는 導火線이 될 뿐임을 알아라. 그리고 最後의 勝利는 오직 神의 愛, 卽 基督의 愛에 있음을 大覺하기를 바란다.

(一九二六年 十月 二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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