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그레코
2007.10.11 02:30

엘그레코 - 목자들의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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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Greco

목자들의 경배

 

162-1614, Oil on canvas, 319 x 180 cm, Museo del Prado, Madrid

 

[목자들의 경배 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는 화가가 자신의 무덤이 들어갈 톨레도의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Santo Domingo el Antiguo) 교회의 가족 채플에 걸어 두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이곳에 걸 그림의 주제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선택한 것은 ‘신의 어머니(Theotokos)’를 뜻하는 그의 이름 테오토코풀로스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말년에 엘 그레코의 작업장은 그의 아들을 포함한 제자들의 손으로 그의 이전 작품들의복제화를 많이 만들어냈는데, 이 작품은 화가 자신의 손에 의해 그려져 그의 후기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화가 특유의 어두운 배경에 성가족과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온 목자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 위로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 씌어진 띠를 들고 있는 천사들이 날고 있다. 빛의 원천이자 구성의 중심은 아기 예수이나, 등장 인물 모두가 불꽃처럼 스스로 선명한 색채의 빛을 발하고 있고, 그 점에서는 지상과 천상의 차이가 없다. 같은 주제로 그린 이전 작품에서 발견되는 균형 잡힌 인체 비례, 조화로운 색채, 이해 가능한 공간 표현에 대한 관심이 이 그림에선 발견되지 않는다. 

인물은 육체의 무게나 질감을 갖고 있지 않은, 불타는 기체와도 같은 모습이다. 엘 그레코 회화에 충만한 운동감은 무게를 가진 고체가 움직이는 느낌이 아니라, 흔들리며 타오르는 불꽃이 만들어내는 상승의 느낌이다. 화가는 이로써 완전히 영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의 시신이 안치된 채플에 놓인 [피에타]와 비교되곤 한다. 티치아노가, 죽은 예수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은 성 히에로니무스의 모습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은 것처럼, 엘 그레코도, 전경에서 무릎 꿇고 있는 목자의 모습에, 자신의 얼굴을 집어 넣었다. 작품이 설치된 곳과 화가의 관계 또한 유사한데, 티치아노가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각인시킨 [성모의 승천]이 있는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에 묻힌 것처럼, 엘 그레코도 톨레도에서 그가 처음으로 제작한 제단화가 있는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에 묻히려고 한 것이다.

 

김진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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