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3 <세상 속의 거룩, 분리주의인가 성육신의 참여인가?>
2026-09-17 15:33:3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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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본문 | 이사야 58:6-9 |
|---|---|
| 신약본문 | 빌립보서 2:5-8 |
| 구약말씀 |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
| 신약말씀 |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우리는 거룩을 '하지 말 것의 목록'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자랄수록 삶의 반경이 좁아집니다. 바리새인이 그랬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분리된 자들'이었고, 그들의 거룩은 오염을 두려워하는 약한 면역력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 레위의 집에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셔도 주님이 부정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가 나았습니다. 참된 거룩은 더러운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들어가 생명을 전염시키는 '성육신의 참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도 멍에를 꺾고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1920년 여자 야학원을 열고, 1925년 홍수 때 옷가지와 양식을 모으고, 만주와 압록강 연안의 낯선 이웃에게까지 구제 연보를 보냈던 선배들의 결단이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입니다.
소그룹 나눔 질문
1. '거룩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세상 사람들과 벽을 치거나 그들을 정죄한 적이 있습니까? 그 마음 밑에 있던 것이 두려움인지 우월감인지 나누어 봅시다.
2. 이번 주간 먼저 다가가 함께 밥을 먹거나 위로해야 할 나의 '세리'는 누구입니까? 가장 작은 첫걸음을 구체적으로 정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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